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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내 친구 연우

by 답설재 2023. 6. 16.

이 이름 모를 것들의 어느 것이 연우고 어느 것이 나일까...

 

 

 

연우(連雨)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사라진 지 20년은 되었습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고들 했습니다.

 

연우는 대학 다닐 때 시를 썼습니다.

학보사 주최 문예행사에서 장원을 했습니다. 나는 소설을 냈는데 소설을 낸 학생은 나뿐이었습니다. 연우나 나나 이 년째 거듭 수상을 했습니다.

 

나는 대안극장 바로 뒷골목 오른쪽 셋째 집이었던가, 괄괄하고 털털한 할머니가 운영하는 하숙집에 거처를 정해놓고 하루 한두 끼 밥을 먹고 잠을 잤는데 어느 날 누군가 연우와 함께 지내면 좋지 않겠느냐고 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방 학생들과 달리 도무지 일어날 기색이 없으면 할머니는 다짜고짜 문을 열어 붙이고 들어와서 이불을 마루로 내던지며 "밥이나 먹고 또 자든지 하라!"며 고함을 지르곤 했는데 나는 겸연쩍게 웃고 연우는 불쾌해했지만 할머니는 그 짓을 계속했고, 나도 맞서서 항의를 했지만 할머니는 그만둘 기색이 없었습니다. 나는 밥은 주는 대로 다 먹었고, 연우는 늘 끼적거리다 말았습니다.

 

연우는 팔팔한 그 나이에도 세상 살기 싫다는 표정이었습니다. 흰 머리카락이 너무 많아서 그것들은 아무래도 새치가 아니었고, 얼굴색도 말이 아니었고, 눈은 늘 흐릿했습니다. 학교는 나보다는 잘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다녀오면 낮이나 밤이나 들어앉아 아니 드러누워 지냈습니다. 그의 '귀차니즘'은 극에 달했습니다. 한겨울 어느 날 집에 들어갔더니 그 추운데 골목 쪽으로 난 봉창에 구멍이 뚫려 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있었는데 내가 그걸 바라보자 그 구멍으로 대롱을 내놓고 소변을 본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다른 곳에서 잘 때가 흔해서 매일 저녁 귀가하진 않았는데 그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서 이튿날 잠깐 들어가 보면 어제 그대로 인양 누워 있었고, 소줏값 좀 있는지 물었고 담배 가진 것 내놓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나도 그도 가난했지만 나는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며 지냈고 그는 내가 아니면 아무에게도 말 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한번 출입을 할 땐 거의 나와 함께여서 우리를 아는 학생들이나 지인들은 내가 나타나면 당장 "연우는요?" 하고 물었습니다. "나오기 싫다네요."

 

둘 다 공부 같은 건 뒷전이어서 시험 기간이 되면 내가 아는 여학생 두어 명(지금 좋은 할머니이겠지요?)이 걱정이 되어 노트를 복사해 주었는데 나는 그걸 펴보지도 않고 연우에게 주었습니다. "너는?" "나는 그 자리에서 책 빌려 보고 쓸게. 내 걱정은 하지 마." 우리에게는 책(교재)도 없었습니다. 술값 담뱃값이 떨어진 연우는 교재를 다 팔아먹었고 나중에는 내 책도 내다 팔았습니다. 어느 날 내가 들어가서 "내 책 어디 갔어?" 했는데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도 더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측에서는 고맙게도 졸업을 시켜주었고, 나는 '선생'이 된 후에 읍내 서점에 가서 '교육'이라고 쓰인 책을 많이 사서 '교육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며 읽곤 했습니다.

 

나는 '다 팽개치고' 열심히(미친듯) 살았고, 나중에 교육부 편수관이 되어 그때서야 연우 생각이 났고 정신을 차리고 연락해 보았습니다. 이것저것 물었는데 참 촌스러운 대답을 했습니다. '어째 이럴까?' 싶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하숙 생활을 할 때와 다를 바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거 큰 일 아닌가 싶어서 우리가 대학 때 함께 "할매"라고 부르며 정겹게 대하던 동기에게 연락해 보았더니 연우는 술만 마시는 교사라고, 소문이 다 나서 어쩔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좀 말리지 그래요!" 나는 무책임하게 말했지만 대답은 확고했습니다. "말렸지요. 말린다고 듣겠어요?"

 

그 후 곧 연우가 저승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는 죄책감을 느끼며 지냈습니다. '연우는 내가 데리고 다녀야 했는데... 그래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연우는 멋진 시인일 수도 있었는데... 멀쩡하게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긴 하지만 나는 나 자신도 겨우 데리고 다니며 살았습니다.

 

 

좋은 친구는

몸으로는 만나지 못해도

어디 있는지 또는 있는지도 몰라도

그러니 세상에는 안 있어도

여전히 좋은 친구다.

 

곁에 있어도 그립던 친구는

곁에 없어도 그리운 친구다

책들이 내게 친구이듯 그는

내가 밤낮으로 읽고 또 읽는

나의 좋은 책이다

 

 

                                (시 「좋은 친구」전문)

 

 

블로그 《삶의 재미》(노루)에서 이 시를 보고 나는 연우 생각을 했습니다.

https://dslee1.tistory.com/1819

 

 

내가 편집장을 지낸 《명륜춘추(明倫春秋)》창간호(1968. 8)에서 연우의 시를 찾아보았습니다. 55년 전 연우는 나와 함께 살아 있었습니다.

 

 

바람

 

 

하루는

내 의식의 둘레를 자리 잡은

은빛 일렁이던 관능의 생선가게에서

해조음으로 가득한

오월의 바람을 줍다가

 

항시 연민의 깊이 안을 존재하는

내 가난한 의지의 처마밑으로 돌아와

그 깊은 내륙의 근원에서만 오는

십이월 하순의 바람 소리를 들을 때

 

설익은 날의 풀과 나무와

이끼가 자라던 기억의 정원엔

빙하시대 큰 눈의

무게가 내리고

 

그리운 날의

수묵화를 걸던 동굴도

문을 닫는다.

 

어쩌면

가장 사랑하는 연인의 나라에도

눈꽃은 빛나

 

다시 개어오르는 하늘

그 차고 푸른 괘도를 따라

길을 나선다.

 

쌍두마차에

물빛의 기를 나부끼고

매운 십이월 하순, 바람의 채찍으로

무거운 연민의 공간을 후려치며

길을 나선다.

 

이제 나의 시력은

오월의 바람에 멀지 않고

무한대의 빙점에서도 얼지 않는다.

마치 저

참혹한 시대를 서는 사나이의

눈빛처럼.

 

내 가난한 의지의 처마밑으로 돌아와

그 깊은 내륙의 근원에서만 오는

십이월 하순의 매운바람 소리를 들을 때......

 

 

 

 

거긴 어때?
술은 좀 마실 수 있고?
담배는?
난 담배 끊었어. 아니, 끊겼어. 2009년 말부터 119 로 실려 다닐 때 중환자실에서 사흘간 혼수상태였다가 깨어나니까 피우고 싶지 않더라고.
술은, 지금도 어떤 술이든 다 좋아. '이렇게 좋은 걸...' 싶어.
그렇지만 아내에게 미안해서 안 마셔. 그 사람, 자네도 봤잖아.
백 가지 잘못은 어쩔 수 없고 '술조차...' 싶은 거지.

거기선 아무리 마시고 피워도 괜찮은가?
와서 보라고?
그럴게.
조금만 더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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