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프랑켄슈타인의 '잠'

by 답설재 2023. 6. 3.

0407

 

 

프랑켄슈타인은 탁월한 과학적 상상력과 분석력, 응용 능력으로 인간을 만든다. 당연히 나무랄 데 없는 멋진 인간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만들었지만 그건 인간이라기보다 기이하게 생긴 데다가 엄청난 힘과 학습력을 지닌 괴물이었다.

누가 좋아할까. 프랑켄슈타인 자신도 그 괴물을 상대하기 싫었지.

창조주로부터 버림 받은 괴물은 한 명씩 한 명씩 프랑켄슈타인의 가족을 죽인다.

프랑켄슈타인은 너무나 괴로워서 꿈속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시간만은 좋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식으로 흘러간 삶은 지긋지긋하게 혐오스러워서, 잠들었을 때가 아니면 기쁨이라고는 맛볼 수 없었다. 아, 축복받은 잠이여! 누구보다 비참할 때면 잠에 빠져들곤 했고, 그러면 내 꿈이 나를 달래주어 황홀한 기쁨마저 맛볼 수 있었다. 수호 정령들이 이런 찰나, 아니 행복의 시간들을 주어 기진하지 않고 순례의 행보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런 휴식마저 박탈당했다면 역경에 무릎을 꿇고 쓰러졌으리라. 낮에는 밤이 올 거라는 희망으로 힘을 내어 버틸 수 있었다. 잠들면 친구들, 내 아내, 사랑하는 고국을 볼 수 있었으니까. 다시 한번 아버지의 자애로운 얼굴을 보고, 엘리자베트의 은빛 목소리를 듣고, 건강과 젊음을 누리던 클레르발을 보았다. 힘겨운 행군에 지칠 때면 밤이 올 때까지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밤이 되면 내 소중한 사람들의 품 안에서 현실을 만끽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들을 향한 내 사랑은 얼마나 괴롭고 괴로웠던가! 심지어 눈을 뜨고 있을 때도 내 온 마음을 사로잡던 그네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얼마나 필사적으로 매달렸으며,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으려 얼마나 애썼던가. 그런 순간 내 안에서 불타던 복수심은 심장 속에서 죽어버리고, 그 악마를 파괴하기 위한 행보는 내 영혼의 열렬한 갈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늘이 내린 사명, 나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힘의 기계적 충동 같았다.

 

 

그렇지만 잠 자는 시간, 꿈꾸는 시간은 행복했을까?

정말 잠자는 시간은 행복했을까? 좋은 꿈만 꾸었을까?

잠 못 드는 밤, 그런 밤들의 그 악몽에 대해서는 왜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어떤 인간이 괴물일까?

 

 

..................................................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김선영 옮김, 문학동네 2022, 277)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늙은이의 진부한 노래  (4) 2023.06.10
메기가 사는 곳  (12) 2023.06.08
"찔레꽃 붉게 피는"  (19) 2023.05.28
늙으면 왜 지겨운 사람이 될까  (20) 2023.05.07
부부 : 행운의 세례 혹은 상극관계  (0) 2023.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