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집에 대한 건축전문가(최욱)의 생각

by 답설재 2023. 3. 20.

 

 

 

1

 

우리는 바다다. 바다에서 생명이 탄생했고 몸속의 농도도 바다와 비율이 같다. 바다를 멀리서 바라보면 우리 눈높이가 바다의 높이다. 앉으면 내려오고 서면 바다는 올라온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 찍은 바다 영상을 보면(특히 영화 「부초」의 도입부) 무릎 높이에서 바다가 걸린다. 촬영기사가 엎드려서 찍었기 때문이다. 어떤 바다의 풍경을 가진 창을 원하는가? 창이 높으면 상대적으로 바다가 작게 보여 하늘이 보이는 창이 된다. 창은 바다의 높이를 적절하게 조율하는 비례 상자이다. 로스코 그림의 틀과 같다.

 

 

2

 

인간은 햇볕에 반응하는 해바라기다. 동해 바다가 서해와 남해 바다와 다른 점은?

낮에 바다를 보면 남쪽 바다는 햇볕 때문에 반짝이는 빛인 반면 동해 바다는 빛을 반사하는 색이다. 바라보는 사람의 눈과 햇볕이 비추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창을 만든다는 것은 풍경을 보기 위한 것만이 아닌 햇볕과 눈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3

 

눈을 감아서 기분 좋은 공간이 훌륭한 공간이다. 시각정보가 압도적이라 우리는 첫인상 때문에 공간을 혼동한다. 그러나 집은 몸이 쉬는 곳이기 때문에 집에서는 모든 감각이 살아 있고 쉴 수 있어야 한다.

바닷가의 집에서 눈을 감으면? 파도 소리 때문에 새로운 숙제가 생긴다. 파도 소리가 망가지지 않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가? (당연히 답은 있다.)

 

 

위 세 가지가 바닷가 집의 원칙이다.

 

1. 고성을 지도에서 보면 삼팔선 북으로 한참 올라와 있다. 원래 이 지역은 6.25 전쟁 이전에 북한이었고 주민들 중에는 피난 와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분들이 많다. 게다가 강원도는 소외 지역이라 도시 사람들에 대한 경계는 당연해서 텃세가 있다. 작은 마을에 외지인이 들어온다는 것은 여러모로 불편한 일임이 틀림없다. 동네에 폐 끼치는 건축물을 만들지 말고 은근히 귀여운 건축물을 만들 것.

 

2. 한국어에 '껏'이라는 단어가 있다. 정도껏, 마음껏, 능력껏. 이 껏은 무한대가 아닌 유한을 스스로 정하는 겸손을 일컫는 말이다. 높은 지대에 있고 바다에 면한 우리 집은 마을에서 잘 보이기 때문에 법이 정하는 크기가 아닌, 필요한 만큼만 그리고 주변의 크기를 고려해서 적당한 부피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마을을 향해 창을 내지 않고 동네에 어울리는 풍경을 만들 것.

 

3. 집의 내부에서 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화강암 절벽과 바위가 많은 바다이다. 내부 재료는 풍경을 견딜 수 있는 성격의 재료로 마감해야 한다. 반면 마을에서 보는 풍경인 외부 재료는 그림자를 만들어 아름답고 경쾌한 바닷가의 건축물을 만들 것.

 

 

위 세 가지는 바닷가 집의 방향이다.

 

멀리 바라보고, 걷고, 간단히 먹고, 다른 일상의 풍경을 보는 것이 나에게 필요했다. 나의 두 번째 집에서의 생활은 공교롭게도 팬데믹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마을회관에서 식사를 대접하자고 하 실장이 얘기했었는데 팬데믹 때문에 늦춰졌고 떡도 돌리지 못했다. 집이 만들어지자 마을 사람들은 걱정이 되었는지 비닐봉지를 하나씩 들고 집 옆 산길을 통해 산행을 했다. 안 보는 척하며 집 옆을 지나 다녔다. 경사가 심해서 편한 길을 아니었다. 그 이후론 다니지 않는다. 아마도 카페가 들어오는 것을 경계했던 것 같다.

(......)

 

헤밍웨이는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고 했다.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다가 천지를 흔들 듯 포효하는 생명의 근원이다. 바람이 만드는 날씨의 맛.

참, 파도와 바람은 별개의 것이다. 바람이 부는 날에도 파도는 치지 않을 때가 많다. 파도는 먼 바다의 바람으로 친다.

 

이곳의 참새는 제비처럼 빠르게 사냥한다. 우리 집 난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유리창에 부딪혀 잠시 어리둥절한 파리를 다이빙하듯 낙하하여 매처럼 낚아챈다. 날씬하고 작은 바닷가 참새들.

이곳에서 두루미와 청둥오리, 수달과 고라니를 보았고 창밖의 절벽 바위에 서 있는 매를 보았을 때는 경이롭기까지했다. 가을 귀뚜라미는 방울 울리는 듯 청명한 소리를 낸다. 아침 일출과 밤하늘의 별, 해무와 달무리.

 

점차 이곳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서울에서 음식을 가지고 오지 않게 되었다. (......) 겨울에는 벽난로에 장작을 피우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햇볕이 있는 날이면 그림자를 찾아 책 읽는 장소를 만든다.

 

땅이 사고파는 것이라면 터는 사람이 살면서 가꾸는 것이다. 좋은 터에 태도와 사고가 더해져야 비로소 문화가 된다. 문화는 좋은 터에서 오랜 시간 정성으로 키워나가야 한다. 싹이 꽃을 갖고 태어나듯 누구나 별을 안고 살아간다. 삶의 변화는 바닷가 집에서의 생활 덕분에 더욱 풍요로워졌다.

모두들 자기 바깥에 점선이 있다. 가벼운 환상도 있고, 커다란 풍선같이 부푼 과대망상도 있고, 깃털처럼 보드라운 분위기를 가진 사람도 있다. 각자의 세계에서 망상에 부딪히지 말고 밀도 있는 공기가 되어 유연하게 살아가기."부드러운 벽돌이 사용된다면 사이에 채워지는 모르타르 역시 부드러워야 한다." S. E. 라스무센Rasmussen(1898-1990)의 이 시적인 언어가 나를 건축에 입문하게 했다. 깊이는 스며 나오는 것이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장소와 기능에 순응하여 자신을 살며시 감추어서 드러나는 겸손.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삶에 정착한다.

(......)

 

 

...................................................................

최욱  1963년 부산 출생. 홍익대 건축학과 졸업. 이탈리아 베네치아 건축대학에서 건축 설계 및 이론 공부. 2006년 베니스 비엔날레, 2007년 선전 홍콩 비엔날레 초대받음. 대표작으로 가파도 프로젝트,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가회동 설화수의 집, 제네시스 신라 라운지 등. 현재 건축사무소 'ONE O ONE architects' 대표. 『도무스 코리아』 발행인.

 

 

이런 좋은 글이 월간 "현대문학"에 들어 있었다.

숨어 있는 걸 찾아낸 것처럼 보였다.

읽고 또 읽었는데 잊고 싶지 않았다.

 

출처 : 『현대문학』 2023년 1월호, 최욱 「두 번째 집」(신년특집 에세이).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인의 시간  (0) 2023.03.23
버려진 책장 : 먼지 대신 책 버리기  (0) 2023.03.22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0) 2023.03.17
"다시 태어난다면?"  (0) 2023.03.15
시인과 쓸쓸한 공무원  (0) 2023.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