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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고달픈 인생길

by 답설재 2023. 3. 3.

 

 

'고달픈 인생길'

 

이렇게 써놓고 어이없게도 일단 미소를 짓는다.

하기야 삶이란 결국 거의 슬픔으로 요약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며칠 전 한 선배의 부음을 들었는데 한번 모이고자 한다는 연락을 하면 늘 호의적이던 평소의 그분을 생각하니까 슬픔이 밀려왔다.

 

1월 22일 계묘년 설날 첫새벽에는 두 자루의 꿈을 꾸었다.

그믐날 저녁에는 '설날에라도 좋은 꿈을 꾸었으면' 싶어했는데 헛일이었다.

 

먼저 꾼 꿈은 절벽 같은 산을 오르내리는 꿈이었다.

애써서, 천신만고로 오르내리다가 '이건 꿈이라도 너무나 힘들구나!' 하며 깎아지른듯한 산마루에서 들판을 내려다보며 힘겨워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겠다고 했을 때 기가 막히고 마음이 비통한 것은 비록 아난다 등 제자들만은 아니어서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탄식했다는데, 무례하게도 그때 사람들의 심정을 나타낸 시가 생각났다.

그 시가 내 심정에 어울린다는 의미는 천만 아니지만 생각났으니까 일단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馬鳴菩薩造 北涼天竺三藏曇無讖 역 "시로 쓴 부처님의 생애 《佛所行讚》정왜 우리말 역, 도서출판 도반).

 

 

25 - 32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과 하늘들은

모두 다 크게 두려워하였나니

마치 사람이 넓은 못에서 놀다가

길이 험하여 마을까지 이르지 못하였을 때

다만 거기까지 가지 못할까 두려워

마음은 두렵고 몸은 바쁜 것과 같았다.

(......)

 

 

나는 더 이상 그 꿈속에 있기가 싫었다. 그렇게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는 지점에서 이 꿈을 마치자는 결정을 내리고 잠시 눈을 떠서 다시 그 꿈을 되돌아보았고, 되돌아보는 것조차 힘들어 돌아누워서 다시 잠 속으로 들어갔다.

 

 

두 번째 꿈은 졸업식 전날의 교실이었다.

그놈들은 내가 54년 전에 처음 만난 놈들이었으니 지금은 대략 쳐도 다 65세 이상이겠는데 하필이면 그놈들이 등장한 것이었다.

내일이 졸업식인데 나는 아직 진도를 다 나가지 못했고, 좀 가벼운 교과지만 몇 장 덜 가르친 과목이 있는데다가 지금 수업 중인 국어로 말할 것 같으면 한 주제 하고도 반은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짓궂은 두어 녀석은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자꾸 수업을 방해하고 있었다.

내가 나서서 해결해 주고 이제 수업을 해볼까 싶으면 또 무슨 핑계를 대고 일어서고 또 일어서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겨우 "좀 앉아봐라, 이놈들아!" 그 한 마디뿐이었다.

 

 

'아, 고달픈 인생이여!'

나는 지금도 절벽처럼 가파른 산이나 오르내리고 이미 65세가 넘은 놈들 졸업시킬 생각에나 머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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