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황 중에 깁스를 하고 대기석으로 나왔다.
성탄절을 앞둔, 눈이 많이 내린 이튿날이었다.
'자, 이제 이 일을 어떻게 하지?'
'일단 집에 가서 차근차근 생각해봐야 하겠지?'
주의사항을 듣고 계산도 했으니까 겉옷만 입으면 귀가할 수 있다.
'근데 이걸 무슨 수로 입지?' 그것부터 난제였다.
한 가지 한 가지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고 한동안, 어쩌면 무한정으로 그게 줄줄이 이어진다는 건 계산하지 못했다.
우선 2kg짜리 거추장스러운 걸 팔에 붙여놓아서 겉옷을 입을 수가 없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하나?'
미안해서 아내에게 집에 있으라고 한 것부터 후회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여성이 일어서서 말없이 겉옷을 받았다.
젊었던 날들의 내 고운 아내처럼
세상이 넓고 복잡한 걸 몰랐던 날들의 누나처럼
한 번만 만나보고 혼인을 하게 되어 아직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은 새댁처럼
마치 내가 싫다 해도 따라다니다가 난데없이 깁스를 하고 나올 나를 기다려준 사람처럼
........
그렇게 해서 그 옷을 입게 되었다.
그이는 나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나도 그이를 바라보지 않았다.
실례일 것 같았다.
"고맙습니다."
바라보지도 않은 채 한 마디만 했는데 여인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돌아오며 '나는 누구를 도와준 적이 있나?' '몇 번이나 그렇게 했나?'......
약아빠진 생각이나 했고
늦은 저녁에 자리에 누워 깁스한 팔을 바라보며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그제야 기억 속 그 여인에게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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