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4일의 글을 새로 탑재함.
'나'는 '잔'과 헤어집니다. '잔'은 헤어지지 말자고 하지만 돈도 없고 어쩔 수도 없습니다. '나'는 일자리를 찾아 다른 도시로 가게 되었습니다(찰스 부코스키 『팩토텀』문학동네, 2017, 181~182).
잔은 나를 그레이하운드 버스터미널 바깥에 내려주었다. 그녀는 내가 간신히 짐 가방을 내려놓을 시간만큼만 차를 세웠다가 곧바로 출발해버렸다. 나는 대합실로 들어가 표를 샀다. 그런 다음, 안쪽으로 걸어가 등받이가 딱딱한 긴 의자에 다른 승객들과 함께 앉았다. 우리 모두는 거기에 앉아서 서로를 쳐다보았고, 그러고는 서로를 쳐다보지 않았다. 우리는 껌을 씹었고, 커피를 마셨고, 화장실에 갔고, 소변을 봤고, 잠을 잤다. 우리는 딱딱한 긴 의자에 앉아서 그다지 피우고 싶지 않았던 담배를 피웠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았고 서로 보게 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는 계산대와 상품 진열대 위에 놓인 것들을 쳐다보았다. 감자칩, 잡지, 땅콩, 베스트셀러, 껌, 입가심용 음료, 감초 사탕, 장난감 호루라기.
버스 승강장, 전철역 대합실에서도 그렇습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아침마다 그곳에서 만나는 사이인데도 서로를 쳐다보고는, 눈길이 마주친 것을 난처해하고, 서로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서로 쳐다보고는 그렇게 서로 보게 된 것을 서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버스 안이나 열차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눈길이 마주치게 되면 그렇게 마주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중대본] 월요일 아침입니다. 대중교통 이용시 ▲ 아프면 타지 않기, ▲ 마스크 착용, ▲ 거리두기, ▲ 대화 자제 등 준수로 안전한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버스나 열차를 타는 것이 조심스러운 나날이 흘러갑니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을 보면 불쾌하고 그러다가 항의를 하고 네가 뭐냐고 덤벼들어서 '대판' 시비가 붙기도 하고 그러면 경찰이 개입해서 그 다툼이 해결되기도 합니다.
아무리 그래봤자 사이가 멀어지면 다 그만입니다. 오죽하면 물리적 거리는 멀어지더라도 마음의 거리는 더 가깝게 하자고 주문하겠습니까.
이십 년쯤 전, 광화문 청사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흔히 열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아침, 금발의 서양 여성이 옆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녀의 옆에서 그 열차를 타고 하루종일 가고 싶었습니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좀 훔쳐보았는데, 눈길이 마주쳤을 때 고맙게도 그녀가 얼른 윙크를 보내주었습니다.
'헉!'
내 얼굴이 홍당무가 되는 바람에 나는 쩔쩔 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쁜 여성이 윙크를 보내다니! 내게.'
나는 그 금발 여성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 어느 여성도 내게 윙크까지는 보내주지는 않았으므로 그녀는 '나의 유일한 윙크녀'가 되었습니다.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게 옷을 입혀준 여인 (0) | 2023.02.19 |
---|---|
겨울밤 벽시계 (0) | 2023.02.17 |
그리운 도깨비 (0) | 2023.02.05 |
그새 또 입춘 (0) | 2023.02.03 |
선생님 저 지금 퇴근했어요 통화 가능하세요? (0) | 2023.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