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은혜를 원수로 갚아버리기

by 답설재 2022. 10. 1.

사진은 본문과 아무런 관계가 없음.

 

 

교사들의 승진 길은 교감이 되는 길밖에 없습니다. 더러 시험을 봐서 장학사나 교육연구사가 되기도 하는데 그건 승진이 아니고 직을 바꾸는 '전직'입니다.  장학사를 밤낮없이 '죽어라!' 하고 나서 교감이 되어 학교로 돌아가게 되면 이번에도 승진이 아니고 전직입니다.

 

1980~1990년대에도 승진하기가 꽤나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경력 점수를 다 채운 교사들 중에는 주임(지금의 부장) 점수를 채우려고 혹은 근무성적을 잘 받으려고 교감 교장에게 쩔쩔매면서 살기도 했는데,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답설재 선생님~ 저는 그런 점수는 다 채웠는데 연구 점수가 모자랍니다. 교육연구라면 답설재 선생님이 전국적으로 이름이 나 있어서 어떻게 좀 선처를 구하려고 이렇게 찾아왔으니 부디 물리치지 마시고 잘 좀 보살펴 주시면 그 은혜는 평생 잊지 않고 살 것은 물론 저승에 가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바쁜 교사였습니다.

아이들도 잘~ 가르치고 싶고 교장 교감이 시키는 일도 죽어라 다 해내고 싶고 교무주임, 연구주임, 학년주임이 시키는 것, 동학년 선생님들이 부탁하는 것도 다 들어주어야 직성이 풀리고 그러면서도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술 마시러 가자는 동료가 있게 되고 그 청을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들의 요청은 술을 마실 수 없는 숙직하는 날 밤에 들어주어야 했습니다. 숙직은 청부(요즘의 주무관)와 함께 근무하는데 그 청부들은 으레 나를 찾아와 머리를 조아리는 선생이 있다는 걸 잘 알고 편의(순찰 돌며 기계로 시간 찍기 혹은 서명하기)를 봐주었습니다. 나이가 나보다 훨씬 많은 교사가 새파란 교사 앞에 거의 무릎을 꿇고 있으니 그 사정이 오죽하겠나 싶었을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아직 새파란 나에게 나이를 따지지 않고 "형님!" 하고 엎드리듯 하던 그 (실제로 그중 어느 놈은 정말로 나이를 따지지 않고 나에게 "형님!"이라고 불렀고, 배우고 가르쳐주면 동생이고 형님이지 그까짓 나이가 무슨 소용이냐고, 동방예의지국은 뭐 말라죽은 것이냐고, 내가 형님이고 자신이 동생이라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나를 설득했습니다) 배은망덕한 놈들은 교감, 장학사, 교장이 되고 나서는 단 한 명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하기야 그 인간들은 나보다 늙어빠졌거나 이미 죽어 저승길을 헤매고 있어서 이렇게 악담을 해봐야 소용도 없습니다.

 

나는 정말이지 박복한 사람인데 그걸 입밖에 내본 적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내 아내는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교장 교감이 되었던 것들이 "형님"인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는 건 까맣게 모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요청은 숙직할 때 들어주었고, 그날 밤에 끝내지 못해서 이튿날 또 그다음 날 집에서 궁리해서 해결해 줄 때 아내가 그게 무슨 일이냐고 물은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저 인간은 늘 바쁘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이치에 대해 이번에 이우환 선생의 책 《여백의 예술》을 읽으며 깨달았고(299~300), 깨달았다기보다 그건 당연하다는 걸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직접 아이디어를 얻은 사람은 싹을 틔울 때까지는 고마워하지만, 그것으로 크게 세상에서 인정받게 되면 그것을 준 사람이 눈 위의 혹으로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래서 지금의 자기 존재가 다른 사람의 힘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숨기거나 호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영향을 용수철 삼아 계속 자기 전개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굴절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혼자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은 초조해하거나 두려워하면서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불안이 에스컬레이트하면 콤플렉스가 심해진 나머지 작품의 제작 연도를 앞당겨보거나 악담을 퍼트려보거나 하다가 끝내는 상대방이 이 세상에서 없어져버렸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슬프고도 끔찍한 얘기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

무언가를 주어도 그것을 양식으로 삼지 못하고 홀로서기 능력을 결여하고 있는 경우 은혜가 원수가 되기 쉽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디어를 준 쪽이 사전에 그런 것을 간파하거나 조심하는 일 또한 쉽지 않다. 실컷 당했으면서도 눈앞에 매달리는 사람이 나타나면 또다시 금방 우쭐해져서 친절심(?)을 연기해버리게 된다. 친절심이란 억제하지 못하는 나르시시즘의 발로와 비슷해, 일종의 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에나! 그 배은망덕한 것들은 교감, 장학사 혹은 교장이 되어서는 '답설재라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없어져버렸으면...' 했다니! 얼마나 끔찍한 이야기입니까!

이런 이야기는 사실은 정설이어서 다른 책에서도 이미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프란츠 크로머 생각이 번개처럼 빠르게 스쳐갔다. 데미안이 그 이야기를 잊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에게 빚을 졌다는 사실이 그토록 불쾌했다. 그거야 그냥 어린 시절의 멍청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그런 빚이 있다는 건......

그는 내가 인사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내가 가능한 한 침착한 태도로 인사를 건네자 그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역시 그의 악수였다! 그토록 확고하고 따스하고 그러면서도 차갑고 남자답다니!

                                              - 헤르만 헤세 《데미안》(안인희 옮김, 문학동네 2013, 102)

 

 

그 배은망덕한 것들은 나에게 빚을 졌다는 사실이 그토록 불쾌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나타날 만한 곳에는 아예 나타나지 않아서 평생 내 눈에 띄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한두 놈도 아니었는데...

 

* 사족입니다.

교육연구란 한 마디로 같은 시간에 더 많이, 더 빨리, 더 재미있게, 더 쉽게, 더 간편하게, 더 행복하게... 그렇게 배우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도 자지 않고, 놀지도 않고, 밥도 빨리 먹고, 다른 건 제쳐놓고... 그렇게 애써서 하는 공부는 사실은 잘하는 공부는 아닙니다. 그런 공부는 하고 싶은 학생이 자율재량으로 하는 건 그야말로 자율재량이지만 모든 학생이 그렇게 해야 하는 교육정책이 있다면 그건 엉터리 가짜 정책입니다.

 

* 다른 사족

그것들이 다시 나를 찾아올 리는 없는 일이지만 다시 찾아온다면 "은혜니 저승이니 하지 말고 이렇게 해서 교감 교장이 되면 애들 잘 가르치겠는지, 선생님들 잘 보살펴주겠는지 맹세해보라!"고 하겠습니다. "어디 제대로 된 맹세를 하는지 봅시다!" 할 것입니다.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럼 정신 없겠는데요?"  (13) 2022.10.09
구월과 시월의 사이·차이  (25) 2022.10.02
지도 위에서 길을 잃어  (9) 2022.09.25
영혼 ③ 고양이네 가족  (14) 2022.09.20
이거 내가 가져도 돼? 괜찮아?  (14) 2022.09.19

댓글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