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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지도 위에서 길을 잃어

by 답설재 2022. 9. 25.

 

 

 

지도를 보다가 '여기가 어디지? 내가 지금 어디를 헤매는 것일까?' 하고 당황할 때가 있다.

지리학을 공부해서 중등 사회과(지리) 교사 자격증을 받았는데도, 그러니까 지도학 강의를 몇 강좌나 이수했는데도 마치 길 잃은 아이처럼 지도 위를 헤매게 된다. 눈을 따라 마음도 길을 잃는다.

 

어제저녁에는 문득 오래전에 살았던 곳이 생각났고, 거기에서 속절없이 헤어진 사람이 갔다는 곳을 지도에서 찾아보았다. 당시에는 멀리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행정구역으로는 멀지 몰라도 거리상으로는 그리 먼 곳도 아니었다. 영토가 작은 나라이니 어디인들 그리 멀다고 할 것도 없다. 그러다가 나는 지도 위에서 방향 감각을 잃어서 그때 살았던 도시도, 그 사람이 떠나간 곳도, 심지어 지금 내가 사는 곳도 찾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었다.

 

- '무릉도원면'?

- 무릉도원면이라니? 세상에...

- 도대체 어떤 곳이지?

- '한반도면'?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 내가 지금 잘못 들어온 건 아닐까?

- '북면'?

- 북면은 북쪽에 있어서 북면이라면 어디의 북쪽일까? 북면도 당연히 어느 곳의 남쪽이기도 할 테니까 그럼 남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라면 다른 곳과 어떻게 관련지어서(시추에이션) 그 지점(사이트)을 확인할 수 있을까?...

 

나는 곧 축척을 작게 해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생겼지?' '음, 여기가 경기도, 여기는 강원도...' 하며 원시적·초보적인 방법으로 내가 헤매고 다닌 곳이 어디인지 확인했고, 길을 잃고 헤맨 골목이 잘 알고 있는 대로의 어느 부분으로 이어지는지 확인한 아이처럼 이번에는 안심하고 다시 그곳으로 들어갔다.

거기가 위 지도에 나타나 있는 바로 저곳이었다.

 

무릉도원면, 한반도면, 북면 사람들이 들으면 섭섭할지도 모른다. "별 희한한 사람 다 보겠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나대로 저곳을 더욱 구체적으로 헤매고 다녔다.

 

- 이런 곳에도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겠지?

- 이곳 사람들도 요즘 이런저런 일로 심란해하고 있을까? 가을이 오고 하늘이 맑아서 위안을 느끼기도 할까? 가을꽃은 거기도 아름답겠지?...

- 내가 죽어 없는 세상에서도 오래오래, 영원히 사람들이 살아가겠지?

- 누군가는 지금 나처럼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몰라.

- 나처럼 문득 수십 년 전에 헤어진 사람이 생각나서 지도를 들여다보거나 구글링을 하거나 더욱 그리워지게 하는 책을 읽거나 할 수도 있겠지?

 

- 아무래도 내가 이따위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어처구니없는 일이야.

- 잠시 지도 위에서 길을 잃었을 뿐이야.

- 그럼 나는 정신을 차려야 하는 걸까?

- 정신을 바짝 차리면 뭐가 달라질까?

 

지도 위에서 길을 잃은 저녁, 나는 내 마음을 읽어보고 오래전 일들을 그리워하고 내가 사라진 날들도 생각해보고 영원 혹은 무한 같은 느낌 속을 헤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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