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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그 처자, 부디 바라는 바대로 살고 있기를!'

by 답설재 2021. 3. 21.

 

 

 

 

그러니까 그날이 1월의 첫째나 셋째 월요일이었을 테다. 터덜터덜 돌아오는데 눈이 쌓인 도서관 비탈 진입로 한복판에 카오스 고양이 한 마리가 당황한 얼굴로 우두망찰 서 있었다. 함초롬히 어여쁜, 이제 막 청소년이 된 듯한 고양이였다. 여기 웬 고양이지? 놀랍고 반가운 마음으로 마침 갖고 다니던 사료를 한 줌 공책 찢은 종이에 얹어 고양이 앞에 놓았다. 피하는 기색 없이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먹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웃는 얼굴이 따뜻하고 화사해 보이는 처자였다. 그 역시 나처럼 도서관이 휴관하는 걸 모르고 왔다고 했다. 이름이 혜조였던가. 길고양이 일로 얽히기도 하고 꽤 가깝게 지냈었는데 이름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네. 넉넉해 보이지 않는 형편에 강인하고 의젓하게 자기 삶을 꾸려나가던 처자. 어디 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지금은 어떤지 궁금하다. 부디 바라는 바대로 살고 있기를!

 

 

월간 《現代文學》(2월호)을 읽다가 '어!' 했고 방금 읽은 데를 다시 읽었다. 황인숙 시인의 에세이 「성큼성큼 겨울나기」.

'그녀 이름도 혜조였지?'

어느 해 겨울밤, 정동에서 회의 하고 식사도 하고 뿔뿔이 헤어진 저녁, 현직에서 물러나 이젠 날개 잃은 신세가 된 내 곁으로 다가온 그녀가 함께 시청역울 향해 걸으며 이야기를 걸어왔다.

자신의 일들이 회의적이라고 했던 것 같다. 교직 생활도 그렇고, 현재의 형편도 그렇고, 곧 떠나게 될 유학에 대한 비전도 그렇고......

 

회의적? 그게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아니었다! 회의적(혹은 부정적)인 걸 내게 얘기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에둘러서 그렇지 그동안 살면서 듣고 본 걸 가지고 확신을 좀 달라는 얘기였을 것이다.

나는 그때 왜 저 시인처럼 그녀에게 따뜻이 해주지 못했을까?

시인이 아니어서? 해외 유학을 해봤자 별 수 없고, 애써서 좋은 논문을 써봤자 '알음알음'이 보잘것없으면 별 수 없는 현실을 직접 보고 있기 때문에?

남의 일 걱정은커녕 내 사정부터 녹록해서?

유학 다녀와봤자 별 수 없다는 건 보편적 시각에 미치지 못한 것이고, 내 사정부터 간단치 않다는 건 단지 이기적 시각일 뿐이지 않은가?

그럴수록 용기를 주어야 마땅했겠지. 더구나 그녀의 지도교수는 나와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으므로 더욱 그랬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 와서 시인 흉내를 내는 건 염치없는 짓이겠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지금은 어떤지 궁금하다. 부디 바라는 바대로 살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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