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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인생을 다시 시작할 경우"

by 답설재 2021. 1. 6.

결혼 65주년 기념일을 맞은 80대 후반의 부부 마사와 데이비드(부부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을 썼다)가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했다. 기자가 그들에게 물었다. "만약 결혼생활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그래도 지금의 남편 혹은 아내와 결혼하시겠습니까?"

이들은 둘 다 "그래요., 당연하죠."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래도 지금과 똑같은 생활 방식으로 사시겠습니까?" 노부부는 이번에도 긍정적으로 답했다.

"자녀는요? 인생을 다시 시작할 경우, 그때도 자녀를 낳으실 건가요?" 그러자 마사는 주저 없이 외쳤다. "그럼요, 하지만 지금의 자식들은 싫어요."

 

                               버나드 오티스 지음 《품위 있게 나이 드는 법》(박선령 옮김, 검둥소, 2020, 52~53)

 

 

 

 

 

내가 보기에는 남자 쪽을 공개적으로 골탕 먹이려고, 무안하게 하려고, 망신을 주려고 하는 질문 같았습니다. "만약 결혼생활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그래도 지금의 남편 혹은 아내와 결혼하시겠습니까?"

그동안 한 일들을 되돌아보면 그런 참혹한 경우를 하루에 한 번씩 당하며 살아도 싸지 싶긴 합니다.

 

그렇게 묻기도 하겠지만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부인과 결혼하시겠습니까?"라고도 묻겠지요? 대답은 99% 망설임 없이(혹은 심사숙고하는 척하다가) "예!"일 것이 분명하고요.

그렇지만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남편(이 질문의 경우에는 '부군'도 아닌 남편, 마음속으로는 '저 인간')과 결혼하시겠습니까?"에 대해서는 아주 높은 비율로 "NO!"인 걸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종종 봤습니다. 그것도 아주 세워놓고 무안을 주려는 작정으로 그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경우 남편 쪽은 '나는 본래부터 낯짝이 두껍습니다' 하는 듯한 표정으로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사실 그 방법밖에는 무슨 묘수도 없을 것이었습니다.

 

"자녀는요?"

이 질문에 대한 저 대답은 흔할지는 몰라도 다행인지 실제로 본 적은 없습니다. 우선 드러내 놓고 그렇게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다른 나라 사례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많이 다른지 의문이기도 합니다.

 

이 농담은 다분히 자식 문제가 초점이긴 하지만 나는 이 글에서 다른 답을 하려고 작정했습니다.

"재생이고 환생이고, (주제넘지만) 부활이고 뭐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사절(謝絶)입니다. 싫습니다. 이 한 번으로 충분합니다."

이 대답은 언제나 단호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이 생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싶은데 그게 아쉽습니다.

누더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