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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현을 위한 세레나데'(차이코프스키)

by 답설재 2021. 2. 12.

Piotr, Ilyitch Tchaikovsky 1840~1893

 

 

음악은 어떻게 듣습니까?

정석(定石)이라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내 말은, 음악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이야 하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주로 그려보는 장면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입니다.

답답하다고 할까 봐 먼저 이야기합니다. 나는 주로 오케스트라의 합주 장면을 그려봅니다.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인데 때로는 혼신을 다하는 지휘자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음악을 제대로 듣는 것이 아닙니까?

연주회장을 그려볼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야 합니까?

눈 오는 거리를 걸어가거나 광활한 산야를 누비고 다니거나 어느 정원에서 누군가의 손을 잡고 끝없는 얘기를 나누거나,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솔로이스트"라는 소설에 차이코프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를 듣는 장면이 나와 있었습니다.

칼럼을 주로 쓰는 기자가 길거리에서 다 부서진 바이올린으로 베토벤 같은 음악을 연주하는 정신병자를 만나는 이야기여서 음악에 관한 내용이 더러 있었습니다.

다음은 둘이서 차이코프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를 듣는 장면입니다.

음악을 듣는 법에 대한 내용은 아니지만 음악을 듣는 장면이 직접 좋은 음악을 들을 때처럼 감동적이어서 이 저녁에 다시 펴보고 옮겼습니다.

 

 

나다니엘과 나는 한번은 차에 타고 KUSC(로스앤젤레스 고전음악 전문 방송국)를 듣고 있는데 나다니엘이 그때 막 흘러나온 작품을 들으며 황홀경에 빠졌다.

"이 음악을 듣고 당신도 나와 같은 걸 느끼나요?"

나다니엘이 물었다.

음악은 처음에는 뭔가를 기대하는 것처럼 점점 소리가 커지다가 갑자기 첫 악장의 초반에 마치 상대에게 홀딱 빠진 구혼자가 너무 많은 말을 하기 직전에 멈춘 것처럼 멈추면서 뭔가를 아름답게 일깨워주고 있었다. 그 음악은 희망이자 열망이며, 로맨스와 사랑의 약속이란 테마를 주제로 한 시였다. (…)

"당신에겐 어떤 느낌이죠?"

내가 물었다.

"이 음악을 들으면 예전 생각이 나요. 줄리아드에서 이 작품을 연습하곤 했어요. 챌폰트 호텔에 있는 내 방 창문가에 서서 눈이 내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 음악을 연주했던 기억이 나요. 이제 콘트라베이스 소리가 나와요. 들려요? 이런 작품을 머릿속에서 생각해내고, 또 그걸 모두 종이에 옮겨 적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믿을 수 없을 정도예요. 한 음 한 음이 완벽하잖아요."

"이게 무슨 작품이죠?"

"차이코프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예요. 멋지지 않아요? 이 음악을 들으면 예전 생각이 나요. 당신도 그런가요?"

뉴욕을 떠나기 전에 나는 나다니엘이 유진 모이와 다른 동급생들과 함께 살던 70번가와 암스테르담 가 사이의 교차점으로 걸어갔다. 나는 나다니엘의 방이 10층 구석에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한때 머물며 연습했던 방의 창문을 볼 수 있었다. 차들과 행인들이 지나쳐 가고, 밑에서는 지하철이 우르릉거리며 지나가는 복잡하고 시끄러운 길모퉁이에 서 있는 동안 그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차이코프스키가 이 음악을 작곡한 지 125년이 지난 후 나다니엘은 이 음악을 다시 새롭게 만들어서 내게 선물했다. 나는 이 작품이 그에게 평화를 준다는 것, 그의 혼란의 언어 속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평화를 준다는 것을 이해했다. 나는 음악의 도입부와 이 음악이 사람을 겸허하게 하고 영감을 주는 방식을 이해했다. 나는 두 번째 악장의 왈츠 부분에서 민첩하게 발을 놀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나다니엘이 저 낡은 호텔 창문 곁에서 자신의 콘트라베이스를 가지고 춤을 추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스티브 로페즈 『솔로이스트』(랜덤하우스 2009), 339~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