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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학교장 인사

by 답설재 2021. 5. 22.

 

 

 

교장의 인사말은 그 교장의 철학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의 전근을 아쉬워하는 첫 번째 학교를 떠나 두 번째 학교에 도착하니까 엄청 서글펐는데 하루 이틀 지나니까 괜찮아졌습니다.

아이들이 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아이들의 수준을 이야기하고 교사들의 능력을 이야기하는 교장은 우스운 인간입니다. 지금도 그런 인간 있습니까? 똑똑한 교사 두어 명만 있으면 학교 일 잘할 수 있다는 인간. 그런 인간은 학교를 서류 만드는 공장으로 여기지만 정작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그 인간이 보기에 똑똑하지 않은, 똑똑한 교사 두어 명 이외의 선생님들이라는 걸 몰랐을 것입니다. 그렇게 이야기할 때 학교 일 잘하는 그런 인간들은 아이들에게는 해충(害蟲) 같은 존재들입니다.

아이들은 어느 곳에나 있으므로 나머지 일들은 다 교장에게 달렸을 것입니다. 교장이 선생님들을 존중하고 사랑해주면 그곳은 이내 아이들의 천국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장은 그 생각을 인사말에 담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자료에 보이는 인사말은 두 번째 학교에 도착한 지 사흘째였던가, 그 학교 홈페이지에 실었고 이후 퇴임해서 영영 집으로 돌아오는 날까지 필요할 때마다 썼습니다.

 

 

 

 

 

 

인사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익숙합니다.

내가 아이들을 바라보며 마음으로 쓴 글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삶이었고, 사랑이었고, 철학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의 그 철학, 그러니까 '나의 모든 것'을 자신이 교장으로 있는 학교 홈페이지 인사말 난에 그대로 옮겨 놓은 인간을 보았습니다.

그 인간에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좀 따져볼까 하다가 차라리 그만두었습니다.

그가 퇴임하면 나의 모든 것을 그대로 베낀 그 인사말이 그 학교 홈페이지에서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언젠가 부산에 내려갔을 때 어느 학교 교장이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 좀 다녀가기를 간청해서 잠시 들렀더니 이런! 그 교장실 벽에 붙어 있는 인사말도 나의 인사말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었습니다.

그 교장은 "내가 당신의 좋은 글을 이렇게 좋아하고 있다"는 걸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다른 어느 곳에 그런 학교가 또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교장들에게 뭐라고 하면 좋겠습니까?

참 불쌍한 인간들이지만 그들도 나도 한때는 대통령 임명장도 똑같고, 봉급도 똑같고, 호칭도 똑같은, 모든 것이 똑같은 교장이었습니다. 자랑스러운 '교육 강국'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교장이었습니다.

철학도 뭣도 없는 불쌍한......

 

 

아래는, 그 불쌍한 교장이 자신의 인사말이라고 내세워서 그 학교 홈페이지에 실어 놓았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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