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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학교, 마음 편할 날 없는 곳?

by 답설재 2021. 9. 8.

 

 

중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 나는 단 1분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는데 로나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로나는 시험이 닥치면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고 가슴이 두근거렸다지만, 나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수업 시간에 질문을 받으면, 아주 간단하고 쉬운 질문인데도 쥐가 찍찍거리는 듯한 소리가 나오거나 아니면 쉰 목소리가 떨려나오기 십상이었다. 칠판 앞으로 나가서 문제를 풀어야 할 때면--달거리를 하지 않을 때조차--치마에 피가 묻은 것처럼 굴었다. 칠판 앞에서 컴퍼스로 그리기를 해야 할 때면 손이 미끌미끌할 정도로 땀범벅이 되었다. 배구를 할 때면 공을 제대로 치지 못했다. 다른 애들이 보는 앞에서 버젓이 해내야 할 때마다 내 반사 행동은 번번이 실패했다. 나는 실업 실습 시간이 끔찍이 싫었다. 공책에 회계 장부를 그려야 하는데 곧은자를 대고 그리는데도 선생님이 어깨너머로 살펴볼라치면 미세한 선들이 왜뚤비뚤 엉망이 되었다. 과학도 싫었다. 우리는 강렬한 빛을 받으며 생소하고 깨지기 쉬운 실험 도구들이 놓인 책상 뒤 민걸상에 앉아서 목소리--그 목소리로 아침마다 성경 구절을 읽어준다.--가 차갑고 제멋에 살고 창피 주는 재능이 남다른 교장 선생님에게 배웠다. 내가 영어를 싫어하는 까닭은 땅딸막하고 너그럽고 눈이 살짝 사팔뜨기인 선생님이 워즈워스 시를 낭송하는데도 교실 뒤쪽에서 빙고 게임을 하는 남자애들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그 남자애들을 야단치다가 애걸했는데, 그때 선생님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빨갰고 목소리는 내 목소리만큼이나 미덥지 못했다. 건들거리며 대충 사과를 한 남자애들은 선생님이 다시 낭송을 시작하면 감격해 마지않는 몸짓을 보였고, 황홀하다 못해 넋이 빠진 듯한 표정을 지으며 사팔눈을 한 채 손으로 가슴을 꽝꽝 두드렸다. 이따금 선생님은 왈칵 울음을 터뜨리곤 했고 그래도 아무 소용이 없으면 급기야 복도로 뛰쳐나가고 말았다. 그러고 나면 남학생들은 큰 소리로 음매음매 소 울음을 울어댔고, 우리의 허기진 웃음소리--오, 내 웃음소리도--는 선생님을 뒤쫓았다. 그러한 때면 교실은 약자를 위협하고 나 같은 사람을 수상쩍어하는 잔혹한 사육제 같은 분위기에 휩싸인다.

               (앨리스 먼로 단편소설「붉은 드레스-1946」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 곽명단 옮김, 뿔 2010, 275~276)

 

 

그런 교실도 있겠지?

그렇긴 하지만 그래선 안 되겠지?

그렇지 않아?

교실인데 왜 그래야 해?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하지 않아?

교실은 세상의 마지만 낙원이어야 하지 않아?

교실보다 더 마음 편한 곳을 찾을 수 있겠어?

혹 그 교실에 들어오는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매번 뭔가를 가르치려고 든 건 아닐까?

왜 가르쳐?

배우게 하면 안 돼?

그걸 왜 모를까?

그렇게 마음 편하게 해주면 안 돼?

나는 그렇게 생각해. 교실은 무엇보다 먼저! 세상 그 어느 곳보다 더! 마음 편한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내 생각을 어떻게 생각해?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복잡해도, 외로워도........... 교실에 들어가면 아이나 교사나 행복해야 해. 어떻게 생각해?

불가능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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