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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찰스 부코스키 《창작 수업》

by 답설재 2020. 3. 27.

찰스 부코스키 《창작 수업》

THE LAST NIGHT OF THE EARTH POEMS

황소연 옮김, 민음사, 2019

 

 

 

 

 

 

 

나는 찰스 부코스키(등장인물 : 헨리 치나스키)가 폭로해버린 아버지 유형에 가까운 아버지라는 얘기를 써버렸으니까 그가 다른 시에서는 아버지를 또 어떻게 표현해 놓았는지 여기에 옮겨 놓고 싶었습니다.

이제 와서 나 자신에게 무슨 복수 같은 걸 하고 싶다기보다는 '폭로'쯤으로 해석하면 적당할 것입니다.

실제로 부코스키(치나스키)처럼 그렇게 하는 자식들이 없지도 않습니다.

 

 

(…)

 

"한심한 인간."

어머니는 말하고 나서

 

일어나 베란다 밖을

내다보았다.

 

"여자도 하나 끼어 있네."

어머니가 말했다. "꼭 남자처럼

생겼어."

 

"거트루드*예요."

나는 말했다.

 

"근육 자랑하는 남자도

있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세 명을 한꺼번에

때려눕히겠다면서."

 

"어니**예요." 나는 말했다.

 

"그리고 여기는." 아버지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들처럼 되고 싶은 남자가 있지."

 

"그런 거니?" 어머니가 물었다.

 

"그들처럼은 아니에요." 나는 말했다.

"일원이 되고 싶긴 하지만."

 

"일자리나 얻어라."

아버지가 말했다.

 

"조용히 하세요." 나는 말했다.

 

"뭐?"

 

"조용히 하라고요. 저 사람들 얘기

듣고 있으니까."

 

아버지는 아내를 쳐다보았다.

"얜 내 아들이

아니야!"

 

"그럴 수만 있다면 좋겠네." 나는 말했다.

 

(…)

 

「모르는 사람」(부분)

 

 

찰스 부코스키는 그의 시집에 이 시를 실었으므로 시에 등장하는 아버지와 아내, 아들은 허구의 인물이어야 하겠지만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며 찰스 부코스키의 일생을 읽고 있었습니다.

'아, 참! 이건 시지? 시야, 시!'

생각하다가 이내 또 찰스 부코스키의 일생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전에 읽은 책들에도 부코스키(치나스키)네 아버지가 아들에게 당하는 장면은 매번 나왔습니다.

 

 

(…)

 

일거리가 없는 남자들은

한때 아름다웠던 아내와

부대끼며 분노했다.

심한 말다툼이 벌어졌고

압류 통지서가

집 우편함에 떨어졌다.

비와 우박

콩 통조림, 버터 없는 빵

달걀 프라이, 삶은 달걀, 수란

땅콩버터

샌드위치

닭고기 없는

닭고기 요리.

 

비가 오면 아버지는

좋게 말해 한 번도 잘해 준 적 없는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렸다.

나는 두 사람 사이로

다리, 무릎

비명 사이로

몸을 던졌다.

두 사람이 떨어질

때까지.

 

"죽여 버릴 거야." 나는 아버지에게

소리쳤다. "엄마 또 때리면

죽여 버릴 거야!"

 

"저 조무래기 새끼

내다 버려!"

 

"안 돼, 헨리, 엄마 옆에

붙어 있어!"

 

모든 집이 난리통이었지만

우리 집은 평균 이상으로

공포에 젖어

있었다.

 

그러다 밤이면

여전히 내리는 빗속에서

우리는 애써 잠을 청했다.

캄캄한 어둠 속

침대에 누워

긁힌 창문 저편

빗속에서도

용감히

꿋꿋이 버티는

달을 바라보며

나는 노아의 방주를

생각했다.

그리고 달이 또 떴구나

생각했다.

우리 모두 그 생각을

했다.

 

(…)

 

「궁색했지만 비는 넉넉했지」(부분)

 

 

부코스키의 생김새***

 

부코스키는 기형이었다. 구부정한 등, 일그러지고 얽은 얼굴, 니코틴에 찌든 누런 치아, 고통이 가득한 초록빛 눈. 그는 갈색의 머리카락이 커다란 두개골에 눌어붙고 골반이 어깨보다 넓은 가분수였다. 손은 기괴하게 작고 보드라웠고, 맥주 배가 벨트 위로 출렁거렸다. 하얀 셔츠와 헐렁한 바지, 잘 맞지 않는 재킷을 걸친 그는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전과자, 밑바닥 인생처럼 보였다.

 

그런 그에게 찾아온 기회***

 

유명해진 이후 시인은 여자들을 갈아치웠다. 여자들이 줄줄이 따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유명해지기 전 일개 노동자일 때는 변변한 여자는 그림의 떡이고 기껏해야 매춘부나 술집에서 만나는 일회성 만남이 전부였다. 그러다 작가로서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고 나서야 결혼도 하고 괜찮은 여자도 만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그간 여자 없이 산 세월에 분풀이를 하듯 여자들을 갈아치우고 동네가 떠나가도록 그녀들과 싸워 댔다.

 

옮기기가 남우세스럽긴 하지만 「가까이 있어 안 보이는 거라네」라는 시입니다.

 

 

(…)

 

나도

그러한 길을

걸어왔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치즈 같은 마녀들

능구렁이 잡년들

 

애송이 창녀들

으르렁대는

마나님들에게

붙잡혀

허우적거렸다.

드세기로는

우주 제일가는

왈짜 년들이

나를 찍은 것인데

그때는

그들이

현명하고

재치 있고

아름다운 줄

알았다.

 

운 좋게

시간과 거리를

두고 나서야

그 여자들이

바닥 중

바닥이라는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 남자들이

슬픈 사연을

털어놓을 때면

나는

할 말이

없다.

내 눈에

그들의 여자들은

드센

할망구

애송이

잡년

치즈 같은

마님

능글능글한

매춘부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 잡는

왈짜 년인 건

말할 것도

없다.

 

(…)

 

진실은

엄연한

진실이지만

아주

가끔

어쩌다

한 번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여자들에게

나는

어떤

남자였을까?

 

 

읽어본 부코스키의 책 :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말년 일기), "호밀빵 샌드위치"(자전적 소설),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시집), "말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시집), "팩토텀"(소설),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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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트루드 스타인 1874~1946. 소설가, 비평가, 미술 애호가, 20세기 초반 파리에서 여러 문인 및 예술가들과 교류하였다.

** 어니스트의 애칭. 헤밍웨이를 말한다.

*** 번역자의 글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