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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야, 이 ×××아!!!"

by 답설재 2020. 1. 12.

 

 

 

 

 

 

    1

 

  저 동그란 표시가 있는 지점이 삼거리의 가운데쯤입니다. 아이들 등교 시간에는 경비 아저씨가 저기 어디쯤에 서서 교통 통제를 해줍니다.

  저 아래에서 우측으로 올라오는 차선이 직진 차선이므로 좌측의 지하주차장 입구를 나온 자동차가 아파트 입구로 내려가려면 좌회전을 해야 합니다.

 

  내가 목격하기로는, 저 아래에서 유유히 직진 차선을 올라오던 자동차 한 대가 삼거리에 거의 진입한 그 시각에 좌측에서도 한 대의 자동차가 막 좌회전을 하려는 순간이었고, 직진 차량이 멈칫멈칫 조심스러워하는데도 좌회전 차량은 거리낌 없이 좌회전을 했는데, 거기까지였습니다.

  좌회전 차량은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직진 차량이 좌측 공간을 아주 적게 주면서 정지해 버렸으므로 좌회전 차량은 엉거주춤 그 자리에 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2

 

  짤막한 대화가 오고 가는 듯하더니 이내 직진 차량의 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러니까 좀 기다리면 될 것 아니야!"

  화풀이를 한(입바른 소리를 한, 훈계를 한) 직진 차량은 곧 이쪽 위로 올라가버렸습니다.

 

  좌회전 차량은 섭섭했을 것입니다. 요즘이 어떤 시대입니까? 어떤 일이든 두부 자르듯 하기가 어려운 세상이어서 걸핏하면 양쪽이 목청을 높이는 세상 아닙니까?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이미 저만큼 사라져 가는 차량을 향해 고함을 질렀습니다.

  "야, 이 ×할 ×아!!!"

  아뿔싸!

  이건 아무래도 잘못된 욕설이었습니다.

 

 

    3

 

  너무나 조급해서 그랬을까요? 좌회전 차량은 직진 차량이 남자인 걸 봤으면서도 그러니까 피차 남자인데도 여자한테 하는 욕을 해버렸습니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습니다.

  '헛욕을 했네? 그것도 분하겠구나. 어쨌든 잘못을 저지른 건 자신인데 이미 지나가버린 자동차 뒤꽁무니를 보고 고함을 지르면 뭐 하나? 훈계를 들은 것이 분하겠지만 거기에다가 욕설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입만 더러워졌잖아. 직진 차량이 그 욕설을 들었다 해도 "저 녀석 보게나. 나를 뻔히 보고도 여자한테 하는 욕을 하네 그려. 눈은 뭐 하려고 달고 다니나? 아니 여자한테 욕하는 게 버릇이 된 인간인가?" 하하하~ 그랬겠지?'

 

  나는 또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꼴불견이구나.'

  '둘 다 이 아파트에 살겠지? 다음에 또 만나면 어떻게 하지? 아이들끼리 단짝 친구일 수도 있고 부인들끼리 늘 만나는 사이일 수도 있고……'

  

 

    4

 

  다른 생각도 했습니다. 나도 운전을 하니까 그게 속 깊은 얘기일 수 있지만 그건 쓸 수가 없습니다. 쑥스러워서 쓸 수가 없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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