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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by 답설재 2019. 12. 22.

 

 

 

 

 

 

그러지 않아도 기가 좀 죽어서 조용히 걸어오는데 저 녀석이 따라오며 사정없이 짖어댔습니다. 주변을 살펴봤더니 도전을 받을 대상은 나 외엔 없었고, 견주(犬主, 요즘 이 단어가 자주 들리던데 사전에도 등재됐나요?)가 뒤따르는 기척도 아직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

(뭐야! 시시하게 보이는 늙은이 주제에 왜 밤에 나돌아 다녀!……)

 

그러거나 말거나, 이 나이에 '애'를 상대로 문제를 삼을 수도 없고 해서 다시 걸음을 옮겼는데 녀석은 그러지 말고 정식으로 해보자는 듯했습니다.

 

"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

(점잖은 척할 것도 없어! 내가 네 실력을 모를 줄 알아? 어디 정식으로 덤비려면 덤벼 봐! 누가 겁낼 줄 알아? 왈왈왈왈왈…….)

 

얼른 작전을 바꾸었습니다. 통할 것 같진 않지만 답답한 그 상황에서 생각나는 건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쭈쭈쭈쭈쭈쭈쭈……."

(그러지 마. 내게 가까이 와 봐. 나 그렇게 나쁜 노인 아니야. 어쩌고저쩌고.)

 

 순간! 견주가 가까이 오는 기척이 들렸고, 그것보다는 억울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저 녀석이 태도를 완전 딴판으로 바꾼 것입니다.

왈왈거리지도 않았고 심지어 나에게는 한푼어치 관심도 없다는 듯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척하고 서 있었던 것입니다.

 

'날 갖고 왜 그래? 내가 뭘 어쨌다고? 우리 주인이 보면 흡사 내가 당신 같은 노인네를 상대로 무슨 짓을 저지른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는데? 웃기지 마! 난 당신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아. 지금 내 관심은 그쪽이 아니란 말이야.'

 

 

 

 

 

저 위의 저 사진과 같은 사진(부분)

 

 

 

 

순간, 나도 얼른 작전을 바꾸었습니다.

혹 모를 일이어서 증거를 남기기 위해 휴대전화로 사진 한 장을 찍고 '내가 뭘 어쨌는데?' 하는 몸짓을 하며 견주가 현장에 도착해서 괜히 복잡한 상황이 전개되기 전에 얼른 돌아선 것입니다.

 

'이 녀석이 분명히 왈왈거렸는데? 왜였지? 저 허름한 노인네가 무슨 짓을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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