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봄비 온 뒤 풀빛처럼』에서 「배웅」이라는 글을 읽다가 최근에 『浮生六記』(沈復)에서 혼백이 오는 날에 대한 글을 본 것이 생각나서 두 글에서 일부를 각각 옮겨놓았다.
사돈의 팔촌보다도 인연이 없는 초면의 언니 시댁 형제, 조카들과 함께 화장장으로 갔고,
같은 상에서 아침 식사도 했고, 모든 장례절차를 마치고 모두들 각각 헤어지기 전에 일반 식당에서 점심 식사도 같이했다.
일반 식당에서 식사할 때는 그분들도 긴장이 풀려서 웃으면서 점심도 맛나게들 자셨다.
한 사람이 태어나고 다사다난한 일생을 살다가 가시는 길에 한 사람이라도 배웅을 하는 사람이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그 어색한 자리에 함께했던 것이고.
「배웅」에서 ☞ https://asweetbasil.tistory.com/17952360
풍속에 의하면, 망인의 혼백은 「살이 돈다」(回煞)는 날에 살을 따라서 옛집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방안의 꾸밈새를 망인의 생전과 똑같이 하고, 또 생전에 입던 옷을 침상 위에 걸쳐 놓고, 신던 신을 침상 아래에 놔두고는 혼백이 와서 마지막으로 돌아보게 한다. 이것을 소주(蘇州)에서는 「눈길을 거둔다」(收眼光)고 부른다. 사람들은 이날 도사(道士)를 청하여 혼백을 침상 앞으로 불러들였다가 돌려보내는 법사를 베푼다. 이것을 「재앙을 맞이한다」(接眚)고 부른다. 양주(揚州)의 풍속은 또 이날 망인의 방에 주안상을 차려놓고는 온 집안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간다. 이것을 「재앙을 피한다」(避眚)고 부른다. 그래서 집을 비워놓고 밖에 나간 사이에 도둑이 드는 수도 가끔 있다 한다.
沈復 『浮生六記』에서
심복은 재앙을 피하려고 밖으로 나갔을까? 아내 운(芸)을 정말로 사랑한, 일찍 세상을 떠나게 한, 가난함은 물론 부모형제 때문에만도 그토록 어렵고 애절하고 애처로운 사랑을 나눈 심복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