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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세 유명 일본인

by 답설재 2019. 10. 11.












세 유명 일본인






  해방 전 학교교육을 받은 사람 치고 가와카미 하지메〔河上肇〕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879년 생으로 교토대 교수가 되었고 1917년에 낸 『가난 이야기貧乏物語』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후 점차 마르크스주의로 기울어 대학에서 쫓겨나 지하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5년의 선고를 받았다. 출옥 후에는 국내 망명생활로 들어갔고 종전 후 1946년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그의 『자서전』도 고평을 받았고 한시도 많은데 그중 다음과 같은 것도 있다.


지조를 지켜 세상 밖으로 노닐고

가난을 감수하며 글을 팔지 않았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이

힐난의 눈과 푸른 구름을 대했다


  그는 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그중 널리 알려진 것은 그의 옥중생활의 삽화다. 우리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진 모리나가〔森氷〕제과의 사장이 명절이 되어 성서와 캐러멜을 들고 위문차 형무소를 방문하였다. 가와카미는 사장과 악수한 손을 말끔하게 씻고 배당된 캐러멜을 변기에 버렸다 한다. 자기의 원고 때문에 발매금지를 당한 잡지사에 원고료를 반송했으며 다시 배달된 수표는 불 속에 집어던졌다. 그의 결벽증을 잘 드러내는 일화인데 보통 경우엔 숨기기 마련인 집안일도 세세히 적고 있다.

  그의 조모는 나이 50이 넘어 젊은 '제비'를 곁에 두었고 그와 더불어 술을 마시며 세상 숙덕공론에 구애받지 않고 굳세게 살아갔다. 30년간 시장 노릇을 했다는 그의 부친은 시청의 사환에게 소학생 아들을 업혀 등하교시켰으며 나쁜 성적을 준 교사는 전직轉職시켰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도조 히데키〔東條英機〕의 전임자인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는 명문 귀족으로 공작이었다. 위에 적은 가와카미에게 경제학을 배우기 위해 정상 코스인 도쿄대학 대신 교토대학을 선택했고 젊은 날에는 오스카 와일드의 『사회주의하의 인간 영혼The Soul of Man under Socialism』을 번역하기도 했다. 중일전쟁 중에 총리로 임명되고 그가 가지고 있는 혁신적 이미지 때문에 국민들의 기대를 모았으나 우유부단했고 군부에 질질 끌려 다니기만 했다. 결국 도조가 총리로 들어서서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패전국 일본의 전시 지도자들이 다수 전쟁범죄자로 지목되었다. 고노에는 맥아더 사령부에서 내린 체포 명령에 따라 12월 16일 출두해야 했다. 그 전날인 15일 밤에 그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함으로써 겨우 일본 국민의 체면을 세웠다.


  한편 가장 큰 전쟁범죄자인 도조는 권총 자살을 꾀하지만 실패하고 살아남아 재판을 받았고 결국 교수형을 당하게 된다. 육군대장이 권총 자살에 실패했다는 것은 역사적인 코미디일 것이다. 게다가 재판을 받던 중 그는 옆자리에 있던 국수주의자 오카와 슈메이〔大川周明〕에게 뺨을 얻어맞아 망신의 기록을 늘렸다. 정말 사람은 가지가지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유종호 「사람도 가지가지―비망록에서」(『現代文學』 2019년 10월호 102~110)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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