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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수학은 암기할 겨를이 없다

by 답설재 2019.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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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암기할 겨를이 없다






1


  임승훈 소설집 『지구에서의 내 삶은 형편없었다』 중에서 「초여름」은 "내가 목을 매단 지 삼 일이 지났다."로 시작하지만 슬프도록 낭만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어린 승훈이는 혼자 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 빅토리아 김으로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무래도 아름다운 여인이 분명했을 그 승무원이 나중에 어느 해변으로 찾아오라고도 했고…… 그래서 뭔가 기대와 희망을 가져도 좋을 듯한 이야기였습니다.

  「초여름」에는 이런 얘기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내가 가지고 간 두 권의 책을 훑어보았다. 특히 『과학이 풀지 못한 수수께끼』를 목차까지 유심히 보았다. 그녀는 말했다. 어머, 불소가 이렇게 신비한 물질이었니? 어머, 세상에. 화재로 죽는 게 질식사가 아니었어?

  ― 어머,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고? 얘, 두 달 전에 그 문제가 풀렸다고 신문에 났단다. 이제 그건 더이상 수수께끼가 아니야.

  나는 너무 놀랐다. 그 책을 이 년 동안 열 번도 넘게 읽었다. 이것들은 내게 마치 현대에 존재하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이나 파로스섬의 등대 같은 것이었다. 근데 그중 하나가 해결됐다고 했다.(364) (…)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 이제 여기 있는 건 다 풀려버리는 걸까요? 인간이 할 수 없는 건 없는 걸까요?

  그녀는 내 안색을 유심히 살피더니 웃었다. 웃으며 말했다.

  ― 아니, 승훈아. 그렇지 않아. 무릇 하나가 풀리면 두 가지를 모르게 되는 법이야. 인간이 우주에서 이해할 수 있는 건 0.00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고 그래. 지난 5월은 그저 하나의 문을 연 것뿐이야(하지만 불쌍한 와일스! 그가 증명을 완료한 1995년에 그는 마흔두 살이어서 필즈 상을 받지 못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더니 더 넓은 방이 있다는 거. 그게 세상이란다. 그래서 우린 꿈을 가져야 해. 꿈이 없으면 나가도 나가도 방뿐이라 마음이 아프거든.

  그녀의 꿈 이야기를 들었다.(365~366)



2


  멋진 누나, 멋진 승무원!

  비행기 승무원들이 이런 여인들이라면 '죽기 살기'로 비행기를 탈 젊은이가 얼마나 많을까, 객쩍은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우리의 승무원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고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걸핏하면 비행기를 타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생각해보았습니다.


  이어서 저 승훈이는 꿈을 갖고 미국으로 가는 길에 그 멋진 누나, 멋진 승무원으로부터 꿈 이야기를 들으며 갔으므로 아직은 그 승무원을 다시 만났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분명 어느 해안으로 그 승무원을 찾아가는 이야기도 포함한 꿈 가까이 가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승훈의 꿈은 소설가입니다. 그는 지금 멋진 소설가가 되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3


  그나저나 이 소설에 의하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해결한 와일스는 마흔두 살이어서 필즈상을 받지 못했답니다.

  우리나라에는 '마흔두 살'이어서 필즈상을 받지 못한 수학자가 많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수학이 좋고, 수학을 연구하고 싶고, 수학에 '미친' 학자가 우리나라에도 많겠지만 불행하게도 그렇게 수학이 좋고, 수학을 많이 많이 연구하고 싶고, 수학에 미칠 즈음에는 이미 나이가 너무 많을 때여서 마흔 살 이전의 수학자에게만 준다는 그 필즈상은 영영 받지 못하는 것 아닐까 싶고, 그러므로 우리나라에는 줄곧 필즈상을 받지 못하는 수학자만 자꾸 나오게 되는 것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수학은 수학을 혐오하기에 아주 좋은 방법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정평이 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수학 공부의 고비를 넘어서 스스로의 힘으로 마침내 수학을 연구하게 되면 이미 너무 늦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무슨 수로 우리나라 교육제도를 뛰어넘겠습니까!

  

  필즈상이 문제가 아니라고, 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하겠지요?

  저는 그런 '억지'하고는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초가을 밤에도 연구실을 지키고 있을 수학자를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주는 상도 일부러 받지 않는 것처럼, 마치 필즈상을 받는 것이 무슨 잘못된 일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하고 무슨 얘기를 하겠습니까?

  그 영광스러운 상이 왜 싫겠습니까? 상이 문제가 아니라는 건 말이 되지 않는 것 아닙니까?



4


  이렇게 하면 좋겠습니다.

  선생님들이나 학원 강사님들이 암기하라고 해서 그 말씀에 따라 암기하는 것보다 더 빨리 이해하고,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빨리 더 많이 탐구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이라도 혼자 가게 해주면 좋겠습니다(우리나라의 '영재교육' 같은 걸 말하는 건 절대로 절대로 아닙니다!).

  혼자의 힘으로도 얼마든지 빨리 가고 멀리 갈 수 있는 그 아이들조차 다른 아이들과 함께 가라고 하지 말고 그냥 자유롭게 풀어놓아 주는 제도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공평한 것 아닐까요?

  그게 공정한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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