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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닐 암스트롱과 계수나무 한 나무

by 답설재 2019. 7. 28.

 

 

 

 

1

 

 

1969년 7월 20일, 닐 암스트롱은 그곳이 달이라며 지구로 연락했습니다.

"휴스턴, 독수리는 여기 고요의 바다에 착륙했다."

그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이것은 한 인간의 한 걸음에 지나지 않지만, 인류로서는 위대한 도약이다."

라디오에서 그렇게 말하던 그 음성을 듣던 일을 기억합니다.

 

올해는 그때로부터 어언 반 세기가 지나 50주년이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48주년, 49주년에는 아뭇소리 없다가 돌연 50주년이라니까 난데없다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따져보니까 50주년이 맞긴 했습니다.

그 환희가 전혀 퇴색되지 않았다는 사람도 많을 것 같고, 그때는 몰랐지만 혹은 그때 자신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놀라운 일이었다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혹 이렇게 생각한 사람도 있을까요?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고?'

그렇게 말하면 50주년이라고 흥분해 있는 사람들은 어처구니없는, 어이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2

 

 

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닐 암스트롱의 음성을 듣던 그 순간에도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습니다. 과학자들은 별것 아닌 것 가지고도 호들갑을 떠는 경우가 있다는 생각도 하는 편이었습니다. 가령 의술은 늘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것이고 더구나 우리나라 의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걸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겠지만 질병에 대한 내 고민의 무게는 그날 그 시각에 비해 하나도 줄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암스트롱이 세계적 인물이 된 그 순간, 나는 아이들로부터 "선생님! 선생님!"하고 불리는 새내기 교사로 경황이 없었고, 내가 그렇게 불린다는 그 놀라운 사실 때문에 대학에서는 내내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그 필요성을 눈곱만큼도 실감할 수 없었던 교육학 서적들을 교사가 되고 나서 새삼스레 새로 구입해서 읽고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도, 그러니까 퇴임한 지 한참이 되었는데도 더러 교육학 서적을 뒤적이는 건 아마도 "선생님!" "선생님!" 하던 그 아이들 때문일 것입니다.

"얘들아, 고마워!"

그렇게 말해야 마땅하지만 내 동료들은 대부분 지긋지긋하다니까 그렇게 말하고 다니기도 난처합니다.

 

 

3

 

 

달 문제로 벌어진 일 중에서 내게는 정말로 충격적인 것도 있었습니다.

1957년, 소련은 인류 최초로 거의 '소문도 없이'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렸던 것입니다. 이 일은 그 후로 두고두고 "스푸트니크 충격"이라는 용어로 회자되었는데 교육계에 미친 영향은 아마도 NASA 다음은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1962년이었던가?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우리는 달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 일이 쉬워서가 아니라 어렵기 때문입니다."라고 선언한 지 7년 만에 달에 간 것이라고 미국인들은 설명하겠지만 아마도 실제로는 스푸트니크 충격이 그 일을 성취하는 동기로서 더 크게 작용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후 NASA에는 밤잠을 설친 사람이 많았겠지만, 우리의 제3차 교육과정(이른바 학문중심 교육과정)은 1973년 2월 14일에 개정 고시되었고 이후 교사들은 걸핏하면 교육청에 불려 가 '학문중심 교육과정'에 대한 연수를 받았는데 장학사들이 필수적으로 언급한 것이 바로 스푸트니크 충격이었습니다.

 

당시의 교육과정 사조에 따르면, 교육과정이란 '각 학문에 내재해 있는 지식 탐구 과정의 조직'으로, 이 과정(過程)을 강력히 주장한 브루너(Bruner, J. S.)는 각 교과의 전문가들이 지식의 본질(구조)을 가장 명백히 표현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조직해 놓은 것이 바로 교육과정이라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조의 교육과정이 나타난 것은, 폭발적으로 팽창하는 지식 및 정보 중에서 교육내용을 선정하는 방법 문제 때문이기도 하고, 각 교과를 잘 가르치기 위한 탐색적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고, 이전의 제2차 교육과정(경험중심 교육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학생의 자발적인 탐구를 통한 지식의 이해를 더욱 정교하게 구체화한 것이 바로 학문중심 교육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 어떤 논리적 설명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교육학자들에게 쇼크를 주어 교육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자극을 준 것은 바로 소련의 스푸트니크 호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교육청 장학사들은 학문중심 교육과정과 함께 '국민교육헌장'이라는 지극히 중요한 문서의 이념 구현도 강조했기 때문에 나는 그것도 스푸트니크 호의 충격 때문은 아닐까, 어처구니없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세월이 간 것입니다.

세월이 가고, 마침내 나는 퇴임을 했고, 지금은 이런 회상이나 하고 앉아 있게 된 것인데 난데없이(?), 아니 난데없다는 느낌을 주며 달 착륙 50주년이라는 소식이 들린 것입니다.

 

 

4

 

 

아파트 정원에서 계수나무 팻말을 본 것도 이달 초였습니다.

이 아파트에 입주한 지가 10년째인데 이제 와서 인간의 달 착륙 50주년에 그게 내 눈에 띈 것은 내게는 공교롭고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이! 내가 계수나무야! 몰랐지?'

 

나는 지금까지 계수나무 같은 건 용(龍)이나 붕조(鵬鳥)처럼 상상 속의 것인 줄 알았습니다. 옛사람들이 괜히 그런 나무를 가정한 것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어서 가령 '桂子' '桂順'처럼 계수나무 계자(桂)가 들어간 이름을 보면 '하필이면 상상 속의 나무를...' 하고 생각했었던 것입니다.

 

그랬던 계수나무가 "이봐! 난 실제하는 나무야! 너 혹 바보 아냐?"하고 나타난 것입니다.

'아하! 정녕 네가 달에서 살고 있는 그 계수나무란 말이지?'

그러자 돌연 저 달을 소재로 한 동요들도 생각났습니다.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어디 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 나라로

구름 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이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저기 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옥도끼로 찍어 내어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짓고 양친 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 지고 천년만년 살고 지고

 

 

―그동안, 그 오십 년 간 나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디뎠고, 이제 이 자랑스러운 인류 중에는 화성으로 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도 가야만 할 날이 온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가령 '미세먼지 나쁨' '미세먼지 매우 나쁨'을 넘어 '미세먼지 최악'인 날이 생기고 그런 날이 부지기수로 늘어나면 인간들은 결국 화성으로 떠나게 되는 것일까?

 

 

5

 

 

그렇지만 아직은 미련을 가져도 좋은 것일까요? 내겐 저 나무가 계수나무였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지구인들은 38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달, 빛의 속도로 1.28초나 걸리는 그 달에 착륙했다고 환호성을 올렸지만 나는 저 계수나무 아래에서 "내가 마침내 계수나무를 봤다!"고 환호성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 팻말에 적힌 나무 이름이 맞는 걸까? 이게 정말 계수나무란 말이지? 확인했고, 돌아서 오다가 되돌아가서 또 확인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좀 슬펐습니다. 계수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다들 알고 있었고, 50년 전에 이미 달에 가서 계수나무 같은 건 눈을 닦고 봐도 없다는 걸 확인했으므로 이제 그런 동요 따위는 다 집어치웠는데 혼자 이러고 있구나 싶은 외로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달에서 본 푸른 별 지구가 온갖 쓰레기, 위세와 다툼으로 뒤덮이고 있는 것도 안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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