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겨울화단

by 답설재 2019. 3. 31.

 

 

 

 

몸이 좀 더 망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감지하는 순간들에는 서글퍼지지만 곧 평정을 되찾게 됩니다.

그렇겠지, 그럴 수밖에 없겠지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당장 자리에 눕는 건 아니니까 우선은 받아들이기도 수월합니다.

이러다가 어느 날 일어나기조차 어렵게 되면 그때는 그때의 사정대로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좀 걸어보자 생각했습니다.

살려고 걷는다고 해도 좋을 것이고, 걷는 시간에 철학적인 생각을 하거나 무슨 혁신적인 생각 같은 걸 할 필요도 없어서 언제부터인지 취미가 된 잡된 생각을 마음놓고 할 수 있고 그건 참 재미있는 시간이니까 그런 점에서도 걷는 건 좋은 일로 여길 수 있습니다.

 

봄은 어디에, 어떻게 오고 있는가 하며 걷다가 저쪽 산에 눈이 내린 걸 보았고, 그러자 문득 초임교사 시절에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 가서 '겨울화단'을 꾸밀 소재를 구해오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예를 들면 빨간 열매가 달린 '겨울 덩굴' 같은 것들, 이끼 같은 것이 곱게 피어 있는 돌덩이 같은 것들이 좋은데 학교 바로 뒷산에는 토끼는 더러 있지만 소나무나 볼품없는 푸나무뿐이었고, 그런 건 학교 앞들 저쪽 건너편 산에 가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위험하기도 하고, 추워서 거기까지 가는 건 우선 나부터도 싫은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싶어도 그것들은 별 말없이 따라나서곤 했습니다.

싫어도 본래 이렇게 하더라 싶었을 것이고 내가 있어서 뭔가 좀 안심이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교장·교감은 그런 일은 꼭 추울 때를 기다려서 시켰습니다.

그곳에서는 싸락눈을 '새매기'라고 했는데, 그 일이 그때는 정규 교육활동의 한 가지여서 새매기가 풀풀 날리는 날이어도 그대로 시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오늘 저 산을 바라보며 그 일을 생각했습니다. '그런 일도 있었지.'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힘들고 고생스러웠지만 이상하게도 누굴 원망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다 지나간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나마 그때는 행복했습니다.

 

교장·교감도 자기네 마음대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위에서, 당시의 문교부나 시·도 교육위원회 같은 곳에서 장학활동으로 그렇게 시켰을 것입니다. 그 문교부에 나처럼 꼬장꼬장한 인간만 있다고 해서 더 좋은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보장도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다만 이 생각은 했습니다. '아이들은 다 집에서 지내는 그 긴 방학 동안 몇 사람이나 그 겨울화단을 보았을까? 교장, 교감은 우리보다는 자주 보았겠지만…….'

 

방학을 마칠 즈음에는, 누가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밤마다 그랬겠지요? 그 아름다웠던 겨울화단이 영 볼품없이 망가져 있었습니다.



 

 

'학교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닐 암스트롱과 계수나무 한 나무  (0) 2019.07.28
"뭐 이런 걸 다…"  (0) 2019.05.25
Were you born to code?  (0) 2019.03.28
다시 교단에 서는 어느 교사의 편지  (0) 2019.02.27
40년 간의 착각  (0) 2019.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