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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40년 간의 착각

by 답설재 2019. 2. 25.

 

 

 

 

 

 

    1

 

지난 15일,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저녁나절, 도서관에 책을 갖다 주고 들어오는데 문득 D시 변두리의 어느 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사십 년이 다 되어가는 어느 해의 교무실에서였습니다. 교장(여), 교감(남)이 저쪽 높은 사람들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여기저기 몇 명의 교사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장이 세상에는 가르치지 않아도 아는 사람이 있고 가르치면 알아듣는 사람도 있지만, 가르쳐줘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했고, 키가 크고 얼굴도 훤하고 싹싹하고 예절 바른 교감은 빙그레 미소를 지어 그 말에 동의하고 있었습니다.

 

 

    2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그 얘기를 들으며 내가 담임하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간혹 떠올린 기억입니다. 아이들 중에는 가르쳐도 모르는,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는 것.

 

 

    3

 

수십 년을 생각한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나는 그날, 2019년 2월 15일 저녁나절, 눈 내리는 아파트 앞길에서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그건 나에게 해당하는 얘기였던 것입니다.

쑥스럽고 창피해서 그대로 쓰진 못하지만 나는 정말이지 아무리 읽고, 듣고, 몸소 겪어 체험해도 끝내 깨닫지 못하여 고치지 못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인간이라는 걸 비로소 깨달은 것입니다.

 

 

    4

 

까짓 거 그 교장, 교감과 교사들이야 상관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제 와서…….

 

교육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내 잘못이야 누가 뭐래든 모른 척하면 그만이지만 잘못 가르친 건 씻을 수 없는 과오가 된 것입니다.

 

'가르치지 않아도 아는 학생'은 내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잘 배웠을 것이므로 내가 가르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수업을 하며 그런 학생을 보고 '저 학생은 내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고 있구나' 착각하기 일쑤지만 사실은 그런 학생은 고쳐주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가르치면 알아듣는 학생'도 사실은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고칠 수 있는 학생, 고치기가 쉬운 학생은 웬만해선 알아듣지 못하는 학생이 아닐까 싶은 것입니다.

 

그것도 그렇지만 나는 자신을 잘 알아듣는 사람으로 자처하며 살아왔다는 것이 어처구니없습니다.

나는 결국 그 세 유형 중 마지막 유형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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