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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요즘 젊은이들은…"

by 답설재 2019. 8. 5.

 

말하지 않고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준 노인(2018.2.22)

 

 

 

1

 

초저녁 전철역이었습니다.

지하 3층이어서 많은 계단을 오르는 것은 만용이라는 판단으로 엘리베이터로 들어갔습니다.

내 또래 노인이 한 명 따라 들어왔고 잠시 후 우리 둘만 태운 채 문이 닫혔습니다.

 

잠시니까 그냥 올라가도 좋을 텐데 또래 의식을 느꼈는지 그동안에라도 대화를 하고 싶은 모양이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해도 해도 참 너무 하는 것 같아요."

"…………."

 

젊은이들은 우르르 계단으로 올라갔고 이 좋은 엘리베이터에 우리 둘이 탔으면 그만이지 뭐가 또 불만일까 싶었고 잠시만 기다리면 지하 1층에 도착하게 되니까 말도 섞고 싶지 않아서 알 듯 모를 듯 정도의, 누가 본다면 아무래도 어색하다 싶어할 미소만 지었습니다.

 

 

2

 

상대방이 기대한 반응을 얼른 해주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날 저녁 그 엘리베이터에서 그렇게 말을 꺼낸 그는 내가 어색한 미소만 지었을 때, 나를 그런 사람에 속하는, 아무래도 반응이 좀 느리고 무딘 축에 속하는 사람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우둔한 사람도 한 마디만 더 건네면 이내 적절한 응수를 해서 짝짜꿍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멀었어요!"

 

그렇지만 그 순간 나는 그에게 적절한 응수를 해주기가 싫은 고약한 심사를 발동하고 있었습니다.

"………."(멀긴 뭐가 먼가요? 그런 걸 가지고 멀다 하면 '아직도'가 아니라 '점점'이 아닐까요? 그런 관점이라면 젊은이들과 늙은이들의 사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요?)

 

'어?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싶었을까요?

그는 예정된 대로, 그런 얘기를 할 때의 공식 그대로 마지막 멘트까지 날렸습니다.

"나는 입바른 소리를 잘해요. 그래서 환영을 못 받지요."

 

나도 갈 데까지 가보자 싶었습니다.

"…………."

환영을 받고 싶으면 입바른 소리를 그만두면 될 것이지만, 그가 환영을 받거나 받지 못하는 건 나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 물론 우리 늙은이들이 이렇게 해서는 젊은이들에게 환영을 못 받겠다거나 우리가 이러저러하게 해야 환영을 받을 것이라는 의견 교환 차원이라면 관계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는 그런 논의를 해보자는 것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이지 그의 문제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고 내 짐만 하더라도 너무 무거운 형편에 내가 누구를 걱정할까 싶었습니다.

 

그도 내친 길에 하고 싶은 말, 흔히 하는 말, '공식'이 되다시피 한 말을 그대로 쏟아 놓았겠지만, 나도 내친 길에 그의 그런 말에 대해 단 한 마디도 거들지 않고 입을 닫은 채 엘리베이터가 멈추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자니 그 몇 초 간이 참 지루하고 초조했습니다.

 

 

3

 

"야, 이 양반아! 무슨 말 좀 해봐! 내 말이 틀렸으면 틀렸다, 맞으면 맞다, 반응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말이야!"

그가 그렇게 대어 들까 봐 걱정스러웠습니다.

 

나도 할 말이야 수두룩했습니다.

"저는 그런 건 잘 모릅니다. 미안합니다."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 그렇게 떠들고 싶어요? 뭐가 그렇게 불만이에요? 그런 말은 뜻이 통하는 친구끼리 하거나 가족들에게나 하세요! 댁의 젊은이, 그러니까 아들딸, 며느리, 사위는 그런 말을 순순히 들어주는가요? 젊은이들은 젊어서, 늙은이들은 늙어서 서로 의사가 맞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젊은이들은 늙은이들에게, 늙은이들은 젊은이들에게 서로의 불만이나 마구 털어놓으면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요? 우리끼리 이렇게 성토를 한다고 젊은이들이 듣기나 하겠어요? 이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게 지금 뭐 하자는 짓이에요?………………"

 

정말이지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지쳐서 단 한 마디도 하기 싫다는 걸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끼리 이렇게 하는 건 전혀 소용이 없고
잠깐이지만 지겹고
더구나 우리에게는 이미 기회가 없지만 그들은 아직 무엇이든 할 수 있고(구세대와 신세대 간에 이러면 안 되겠다면 그들이 그냥 둘 리가 없고, 일단 그들이 가진 변화의 가능성이나 힘이 더 크고……),
그래서 나로서는 좀 생각이나 하고 싶고
웬만하면 다 받아들이고 싶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이 틀린 적은 없었던 듯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다면 앞으론들 젊은이들이 틀릴까 싶고 틀리기를 바랄 것도 없고

…………

정말이지 하고 싶은 말은 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4

 

내 성격이 이모양이어서 누가 좋아하겠나, 젊은이들은, 그들은 젊고 나는 늙어가니까 그래서 싫고, 늙은이들은 아주 공식이 된 대화조차 못 들은 척하는 인간이어서 싫어하면, 그럼 이 까칠까칠한 인간을 좋아할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싶은 것이었습니다.

 

"아, 정말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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