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내가 아파트 앞 상가에 다녀온 얘기를 하면서 덧붙였습니다.
"사장님은 어디 가셨냐고 묻대?"
"……."
'사장님이라뇨?'
'댁의 사장님요.'
'아~ 없어요.'
'아하! 저런! 돌아가셨군요……. 어쩌면 좋아요. 제가 큰 결례를 저질렀네요. 양해해 주세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천만의 말씀요. 아직 죽진 않았어요. 다만 우리 그이는 본래 사장이 아니었어요. 선생이었어요, 학교 선생요. 그리고 오랫동안 교육부 근무도 했는데 아직 죽진 않았고요(곧 죽을지도 모르지만요)."
'아~ 이런! 제가 또 실수를 했네요. 정말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아내에게 이 가상 대화를 이야기하진 않았습니다.
2
십 년도 더 된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그즈음 우리 부부는 나는(혹은 '이이는') 사장이 아니라고 일일이 밝히며 돌아다녔습니다. 그건 참 고역이었는데, 상대방의 반응이 다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간단히 그러냐고 하는 사람도 있고, 뜨악하게 바라보는 사람도 있고 또……. 어쨌든 그랬습니다. 이제 와서 다 생각해내기도 귀찮습니다.
고역인 건, 상대방 반응도 반응이려니와 내가 왜 사장처럼 보이는지 매번 생각이 깊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걸 아내와 털어놓고 이야기하기도 난처했습니다. 아내는 필경 '그 흔한 사장 한번 못하는 주제에 말만 많고 이제 와서 고민도 많네' 할 것이어서 내가 스스로 그런 지경에 들어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나는 왜 사장이 되지 못했는지' 자책감이 들기 시작하면 그건 털어놓고 논의할 주제도 되지 못한 채 사람을 우울해하도록 만들기 일쑤였습니다.
아내인들 오죽했겠습니까? 내가 왜 이런 어설픈 인간에게 속았는지…….
그러면서 세월이 갔습니다.
우리 부부의 세월은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설명하기도 싫습니다. 우선 간단치가 않습니다.
하기야 다들 그렇겠지요?
나는 텔레비전 같은 데 나와서 아직 사십 대, 오십 대, 기껏해야 육십 대로 보이는 사람이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느니 어쩌니' 하는 걸 보게 되면 참 별꼴 다 보겠다 싶었습니다. 앞으로의 생활이 여전히 그렇다면 그때 가선 또 뭐라고 할지, 파란만장한 세월을 두 번이나 보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그럼 '오디세이아'라도 한 권 새로 집필하게 되는지 어떻게 하려는지……
3
이런 얘긴 간단한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래, 본론으로 돌아가서, 우리도 이제는 그 "사장님"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진 않게 되었습니다.
사장님이 넘쳐나는 대한민국,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건 예사로워서 이젠 "회장님" 혹은 "대표님"이 그럴듯한 호칭이 되고 있습니다. 급하면 동향 모임이나 동문회 친목회장이라도 아쉬운데 그조차 맡을 차례는 아득합니다.
좀 딴 얘기지만, 식당 같은 데 가면 "이모"도 넘쳐납니다. 아 참! "오빠"도 그렇습니다. 나는 처음에는 '저 아가씨는 오빠하고 시장에 왔구나', '저 아가씨는 오빠하고 밥 먹으러 왔구나' '저 사람은 이모네 식당에 밥 먹으러 왔구나' '세상에, 어떻게 오빠하고 저렇게나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저럴까?' '무슨 여동생을 오빠가 저렇게 부둥켜안고 부부처럼 저럴까?' 했었습니다.
하기야 하나만 낳는 세상이니, 아니 하나도 낳기 어려운 세상이니 진짜 이모 고모 오빠가 귀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오빠도 많고 이모 고모도 많으면 좋을 건 당연합니다. 세상이나 그처럼 더 따듯한 곳으로 변해가면 좋겠습니다.
또 딴 얘기를 했습니다. 두서가 없어서 미안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우리 부부도 이젠 내가 사장으로 불리는 이유도 알고 있고, 내가 사장으로 불려도 괜찮다고 여기고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불리는 경우에도 그저 무덤덤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나는 사원이 딱 두 명인 우리 집 사장이라고 자처하면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회장 혹은 대표까지야 가겠습니까? 또 진짜 사장은 내가 아니라고 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진짜 사장과 경영상 내세운 사장이 다른 경우가 아주 흔하기 때문에 내가 진짜 사장이고 아내가 경영 사장 혹은 명예사장이어도 좋고, 아내가 진짜 사장이고 나는 경영 사장 혹은 명예사장이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부부는 둘 다 사장인 셈입니다.
4
덧붙이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다 사라지고 흔적을 찾기조차 어렵습니다.
시골에서 살며 장가를 들었을 때 마을 여인네들은 저더러 "새양반"이라고 불렀습니다. 새 양반, 나는 그 말에 스며 있는 가치관 따위는 두고 우선 듣기에 좋았습니다. 이제야 내가 대우를 좀 받게 되었구나 싶었는데, 그즈음 우리 집을 찾는 사람들은 나에게 "선생님"이란 공식 호칭이 있는 걸 알면서도 "바깥양반" "사랑양반"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부질없는 것들이지만 이제 '사장님"이 되었으면서 그냥 그날들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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