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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오병훈 《서울의 나무, 이야기를 새기다》

by 답설재 2019. 6. 13.

오병훈 《서울의 나무, 이야기를 새기다》

― 나무지기의 도시 탐목기探木記 ―

을유문화사 2014

 

 

 

 

 

 

 

1

 

서울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평범한 나무들" "마을 주변의 가까운 공원이나 도심의 고궁, 야산에서도 볼 수 있는 친근한 나무들이어서 정감이 간다"고 했습니다.

 

"선비가 좋아하는 나무"라면서 회화나무, 은행나무, 참죽나무, 매화나무, 감나무, 돌배나무, 소나무, 금목서, 능소화를 소개했습니다.

또 "전설 속에서 자라는 나무"로 겨우살이, 계수나무, 팽나무, 무궁화, 사과나무, 자두나무, 철쭉, 장미, 인동, 석류나무, 꽃개오동을 이야기하고, "산을 지키는 산신령 같은 나무"로 자작나무, 오갈피나무, 잣나무, 때죽나무, 구상나무, 오동나무, 산사나무, "마을의 이웃 같은 나무"로 느티나무, 버드나무, 칠엽수, 벚나무, 진달래, 영산홍, 동백나무, 싸리나무, 뽕나무, "먹을 수 있는 맛있는 나무"로 아까시나무, 상수리나무, 으름, 마가목, 칡, 구기자나무, 모과나무, 대추나무를 이야기했습니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탐목기(探木記)'이겠지만 읽는 입장에서는 일일이 찾아다니기는 어려워서 일단 '나무 설명서'인데도 참 재미있습니다.

게다가 문장조차 아름답습니다.

 

 

2

 

회화나무에 꽃이 피면 성급한 이는 가을을 준비한다. 열정적인 더위가 물러가고 햇살이 건조하다고 느낄 때쯤이면 회화나무 가지에서도 연노란 꽃이 다투어 핀다. 수많은 꽃들이 작은 벌새처럼 꽃잎을 열어 나무 전체를 우윳빛으로 물들인다. 다른 나무들이 열매를 살찌우고 익어 갈 때 회화나무는 비로소 꽃을 피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대기만성이라고 해야 할까. 이어 가지마다 수많은 꼬투리를 매달고 속에서는 씨가 여물어 간다. 회화나무의 열매는 팥꼬투리처럼 길고 볼록볼록 튀어나온 것이 마치 염주 같다. 이 나무는 콩과식물이므로 실제로 꼬투리를 열면 작은 팥알 같은 씨가 3~5개씩 들어 있다. 그러다가 서리가 내리면 잎이 시든다. 떨어질 때는 깃꼴 모양으로 달려 있던 작고 긴 타원형의 잎사귀가 하나씩 떨어져 땅에 깔린다. 그러면 지면은 온통 녹색 카펫이 깔린 것처럼 변한다. 회화나무의 잎사귀들은 꽃잎처럼 그렇게 떨어져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히며 사라진다. 가로수로 심은 회화나무도 예외는 아니어서 떨어진 작은 잎사귀들이 빗물에 젖어 서러운 이별을 한다.(17~18)

 

회화나무는 지는 꽃이 아름다운 나무다. 장마가 막 끝난 어느 날부터 천천히 꽃이 벙글어지기 시작하여 점점 연노란 꽃송이를 더하다가 절정기를 지나면서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작은 꽃잎이 지면을 온통 하얗게 뒤덮는다. 쓸어도, 쓸어도 이튿날 자고 나면 또 그만큼 깔려 있다. 밟고 지나가기 아까울 정도로 가련한 꽃이파리들. 시들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젊음을 송두리째 버리는 열정의 꽃들은 그렇게 미련을 두지 않는다. 계절이 바뀌듯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는 아쉬운 꽃이다.(20)

 

 

3

 

나는 이 부분을 여러 번 읽었습니다.

이 부분을 옮겨놓고 아쉬워서 역사적인 내용, 필자의 소망 부분도 일부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옮기지 못한 부분이 아쉽습니다.

 

회화나무의 어린 가지는 녹색이다. 오래된 가지는 잿빛을 띠지만 더 오래 묵은 가지는 거칠게 갈라지며 거대한 줄기로 자란다. 회화나무는 천 년을 사는 나무다. 은행나무, 느티나무, 팽나무와 함께 4대 장수목이라 불린다. 네 가지 오래 사는 나무 중에서 느티나무와 팽나무만이 우리의 자생 수종이고 회화나무와 은행나무는 중국이 원산이다.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사기』 열전에 "성이 함락되자 백제의 해론이 회화나무에 머리를 받고 죽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이미 그 이전에 들어온 것임을 알 수 있다.(17~18)

 

(……) 인사동 길이나 강남의 가로수는 대부분 회화나무이다. 줄기가 제멋대로 뻗어 나가는 성질이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학문에 개성이 있고 창조적이어야 하듯 회화나무 또한 개성이 뚜렷한 나무인 것 같다.

 

 

학문의 상징이요, 지혜의 상징인 이 나무를 학교 교정에도 심고 아파트 구내에도 널리 심고 가꾸었으면 좋겠다. 회화나무 아래에서 미래를 꿈꾸고 사회나 국가에 이바지하는 훌륭한 인재들이 태어나기를 빌어 본다.(24)

 

 

4

 

오병훈, 그는 늘 그리운 친구입니다.

부모님 두 분께서 번갈아 지키는 가게를 찾아가면 아들의 친구를 반겨주시던 그 날들이 그립습니다.

호르헤 볼레의 피아노 연주로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를 들으며 이 포스팅을 작성하고 있으려니까 우리의 그 젊었던 날들, 그 철없음과 낭만으로만 넘쳐난 기억들이 파도를 이루어 몰려옵니다.

굳이 다시 찾아올 필요는 없는, 다시 오고 싶지는 않은 세상의 되찾을 수 없는 그날들이 무한히 그립기는 합니다.

 

그는 그림을 좋아하던 소년이었는데 나무지기 혹은 식물학자가 되었습니다. 식물에 대해서는 아직도 탐구해야 할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할 일이 많이 남았다면, 그는 아직 소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소년에 지나지 않는 그를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