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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힘들여 낳고 막 다루기 (2018.8.23)

by 답설재 2018. 8. 23.






힘들여 낳고 막 다루기





                                                                                        2018.8.16.





  4세 아이가 어린이집 통학버스에 갇혀 7시간이나 방치됐다가 숨진 이튿날에는 보육교사가 11개월짜리 아이를 몸으로 짓눌러 질식사시켰다. 지난달의 일이었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해 CCTV를 공개하는 등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했는데 이런 대책이 소용없을 정도로 되풀이되고 있다." "완전히 해결할 대책을 세워 보고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아니 할 말로 현장의 관점이 여전하다면 학부모들은 위험지역에 무방비로 아이들을 내놓는 꼴이 된다. 그걸 보여주듯 그새 또 식사 시간에 아이들을 학대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집단지도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은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바라보며 보살피고 가르치는 관점이 있다면 어느 한 아이도 전체와 똑같은 비중으로 소중하다는 관점이 있다.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교육은 겉으로는 당연한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쉽고도 졸렬하고 유치하다. 수준이 낮고 세련되지 못한 교육이다. 우리는 이 관점에 너무 익숙해서 탈피하기가 어렵게 되었고 심지어 가장 좋은 방법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아이들을 전체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곧 뒤떨어지는 아이가 보이기 마련이고 그들이 성가신 존재가 된다. 낮잠 좀 자라고 호소할수록 눈이 말똥말똥한 '찌꺼기'가 생기고, 밥 먹는 시간인데도 딴짓부터 하는 '찌꺼기'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찌꺼기?


  지난봄에는 교사들이 2~3세 아이들에게 "빨리 먹어, 찌끄레기들아!" "아휴, 찌끄레기 것 먹는다" "뭘 봐 찌끄야, 선생님 이야기 안 들리니?"…라고 한 것은 푸념, 짜증일 뿐 정서적 학대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판결이 대법원으로부터 나왔다. 정신건강에 영향을 준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법리적 판단은 법원의 최종적 해석이므로 그것으로 그만이다. 다만 우리는 교육적으로는 그런 말을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런 '푸념', '짜증'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믿고 있다. 찌꺼기라는 언급 자체를 금기시한다.


  그런데도 아이들을 '전체'로써 다루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결코 그 찌꺼기들도 만족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거나 시도하지는 않는다. 우선 그렇게 하기를 싫어한다. 번거롭고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여긴다. 지금의 그 방법이 가장 훌륭하고 멋진 것이라고 믿는다.


  그 아이들이 '찌꺼기'라면 그 찌꺼기들과 함께하는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그에 못지않은, 게다가 앞뒤가 꽉 막힌 부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부류는 거의 어느 교육기관에나 잔존하고 있다. 심지어 서너 명을 앉혀놓고도 턱 버티고 서서 "내 설명 잘 들어라!" "아는 사람 손들어!" 하며 가르치고, 대학에서도 별 수 없어서 강의는 끝까지 교수 혼자만의 독점적 설명으로 일관한다.


  어린이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잠을 자라면 자야 마땅하고 교사도 좀 쉬어야 하는데 '대다수'도 아닌 겨우 '하나'인 주제에 룰을 지키지 못하니까 '찌꺼기'라고 비웃고, 이불에 싸서 짓눌러 질식하게 하고, 발길로 걷어차 쓰러뜨리는 등 가녀린 아이들을 잔인하게 취급하는 비열함을 연출한다.


  이 상태로는 애 많이 낳기를 기대할 수 없다. 힘들여 낳고 막 다루는 행태부터 근절해야 한다. 어린이집은 국공립이든 사립이든 엄연한 '보육기관'이다. '영유아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보호 양육하고 그들의 발달 특성에 맞는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이다. 발달 특성은 어떤 것인가. 당연히 제각각이다. 아이들은 제각각이어서 소중하다. 그걸 인정하는 것이 이 문제의 근원적 해결책이 된다.


  아이들의 정체성부터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아이들이란 중구난방일망정 얼마나 상처받기 쉬운 존재들인지, 곁에 있는 어떤 아이라도 좋으니 그 눈 좀 들여다보기 바란다. 그 눈을, 그 아름다움과 섬세함을 어떻게 훼손할 수 있겠는지, 그게 인간으로서 할 짓인지 그 눈을 들여다보기 바란다. 우리의 그 아이들이 오늘도 이런저런 상처를 받고 쓰러지고 있다는 것을 상기해보기 바란다.


  "나를 하염없이 눈물 나게 하는, 풀잎 촉 트는 것, 햇병아리 뜰에 노는 것, 아지랑이 하늘 오르는 그런 것들…"(박재삼, 천지무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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