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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너무나 공정한 나무타기 경기 (2018.9.20)

by 답설재 2018. 9. 20.

 

 

 

 

평가에 관한 유명한 카툰이 있다. 교육자로 보이는 늙은이가 쓸데없이 큰 책상 앞에 여유만만한 자세로 앉아 있다. 절대복종과 암기, 주입식 교육밖에 모르는 김나지움의 권위적 교사가 군대 중위 같았다고 한 아인슈타인이 본다면 혐오하고도 남을 인물이다.

 

과연! 늙은이 앞에는 새, 원숭이, 펭귄, 코끼리, 물고기(수조 속), 바다표범, 개가 한 마리씩 일렬횡대로 정렬해 있고 그 뒤로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늙은이가 이렇게 말한다. "공정한 선발을 위해 너희들은 같은 시험을 봐야만 한다. 모두들 저 나무에 올라가라."

 

선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공정한 경쟁이었는지, 불평한 수험생은 없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다만 그 그림 아래에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란 제목의 간단한 해설이 보인다. "모든 이가 다 천재다. 그렇지만 나무를 오르는 능력으로 물고기를 판단한다면 그 물고기는 끝까지 자신을 멍청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다."(아인슈타인)

 

2022학년도에 적용될 대학입학전형제도가 대학별로 정시를 30% 이상으로 늘이고,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선택과목을 대폭 확대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 과정을 보며 떠오른 것이 저 카툰이었다. 특히 수시전형의 공정성은 신뢰할 수 없지만(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신뢰할 수 있겠지?), 결과가 수치로 나타나는 수능(정시)은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카툰이 생각난 다른 이유도 있다. 논의가 개편의 범위부터 설정해놓고 시작된 점이다. 수시와 정시 비율은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정시 비율을 45% 이상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보다 얼마쯤 확대할 것인지, 혹은 대학 자율에 맡길 것인지), 수능평가방법은 상대평가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전 과목 절대평가로 전환할 것인지, 또 수시입학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은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등이 그 시나리오였다. 그 과정이 우리의 대입전형은 교육환경이 아무리 바뀌어도 수능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가 없겠다는 숙명 같은 걸 느끼게 한 것이다.

 

의문은 여러 가지였다. 대학에서의 수학(修學)은 대학 생활에 달린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수능 점수로 학생들을 서열화하는 건 아예 대학수학능력을 서열화하자는 것 아닌가? 미세한 점수 차까지 중시하는 건 이 시험 도입 취지에 맞는 것인가? 수시와 정시의 이상적 비율이 존재하는가? 그 비율은 누가 어떤 전문성으로 정할 수 있는가? 혹 수시의 비율이 늘어나자 그 단점을 부각시켜서 정시를 늘이는 비논리적인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닌가? 이런 논의는 이상적인 것인가?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논의'였다면 우리는 언제쯤 이상적인 논의를 할 수 있게 되는가? 사교육비 경감 효과 때문에 정시를 확대하는 것이라면 그 논리가 언제까지 교육논리에 우선해야 하는가? 수시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의심)을 들어 정시를 늘인 건 교육적 후퇴에 해당하는 엉뚱한 결과가 아닌가?…

 

이번 결정은 정시 확대와 함께 국·수·탐 선택과목을 22개로 크게 늘이고,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는 아랍어 쏠림현상 등을 막기 위해 제2외국어와 한문 영역을 절대평가로 바꾸는 등 실제적 변화가 많았지만 긍정적 반응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반면 수능 변수가 늘어나 점수 따기 경쟁, 사교육 컨설팅의 심화를 걱정하는 이가 많아서 이런 식이라면 대입전형은 앞으로 아무리 바꿔봤자 만족한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 얘기와 함께 주입식 암기교육, 5지 선다형 평가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일본은 곧 대입시험에서 국어, 수학부터 정답 없는 서술형으로 바꾸고 대학별 본고사에도 프레젠테이션, 에세이, 논술을 도입할 예정이다. 우리도 몇몇 교육청에서는 토론·발표 중심 수업을 하고 논술·서술 평가로 성적을 매기는 IB(국제 바칼로레아)를 도입하고 싶어 한다. 5지 선다형은 과연 언제까지 유효한 평가방법으로 남을까? 이렇게 물어도 좋겠다. 모두들 나무타기를 하는 것이 공정한가? 제각기 뛰고 달리고 오르고 날게 하는 것이 공정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