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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제비뽑기로 정한 부장교사 (2018.7.19)

by 답설재 2018. 7. 20.

 

2018.7.7.

   

 

 

벼룩 몇 마리를 빈 어항에 넣는다. 어항은 벼룩들이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높이다. 그 위에 유리판을 올려놓아 어항 아가리를 막는다. 벼룩들은 톡톡 튀어 오르다가 유리판에 부딪치는 것이 고통스러워서 스스로 도약을 조절한다. 한 시간쯤 지나면 모두 천장에 닿을락 말락 하는 높이까지만 튀어 올라 단 한 마리의 벼룩도 유리판에 부딪치지 않게 된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이젠 어항 위의 유리판을 치워도 벼룩들은 마치 어항이 여전히 막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 제한된 높이로 튀어 오른다는 것이다.

 

어느 교장이 업무가 능숙한 10년차 이상 중견교사나 역량이 탁월한 교사에게 보직을 맡기면 좋겠는데 희망하는 교사가 적어서 기간제 혹은 신임교사에게 맡기거나 제비뽑기도 시켰다는 기사를 봤다. 문득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에 나오는 저 벼룩 얘기가 떠올랐고 그런 학교의 경우 벼룩은 학생들일까, 교사들 혹은 교장일까 그것이 알쏭달쏭하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는 자부심․사명감 넘치던 그 부장교사들을 마침내 제비뽑기로 임용했다고? 놀라운 일이 아닌가! 아이들이 그걸 알았다면 뭐라고 했겠는가! "선생님! 우리도 회장․반장을 제비뽑기로 정하면 어떨까요?"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도 제비뽑기로 정했겠지요?"….

 

젊은 교사들 중에는 사명감을 발휘하기보다는 일찍 퇴근해 취미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학교폭력, 학부모 민원을 처리해야 하는 생활지도부장은 아무도 안 하려고 해서 너무나 힘들다며 젊은 교사들의 일반적 의식을 지적하는 교장도 있다. 변화는 분명한 것 같다. 장학사 임용시험 미달분야도 발생했다지 않은가.

 

보직문제는 서울, 부산을 비롯하여 전국적 현상이어서 보직교사에게 주는 근무경력 가산점 상한선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한 교육청도 있다. 교장, 교감을 하고 싶으면 순순히 보직을 맡으라는, 결코 교육적이지 않고 적극적이지도 않은, 편의주의적인 방안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교장들이 개탄하는 그 젊은 교사들은 거꾸로 그런 힘든 일은 교장․교감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빈정대기도 한다. 모든 일을 교장이 다 정했으니 부장교사도 어떻게든 교장이 정해야 할 것 아니냐며 그동안의 비민주적 행정을 대놓고 비판한다. 교장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기야 수업보다는 수업 외 역량을 일삼고 사명감을 취미생활보다 우위에 놓는 건 어색한 점이 없지 않다.

 

교사들과 둘러앉아 의논해서 결정하고 함께 정한 일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지는 교장도 있지만 솔선수범이랍시고 남이 보는 데서 휴지나 몇 장 줍고 정작 의논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는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엉뚱한 교장도 있다. 그러니까 "교장왕국"이란 말이 사라질 수가 없는 것이다.

 

일전에는 교장→교감→행정실장→교무부장 순으로 주차하도록 지시하고 교직원을 대상으로 인사 훈련까지 시켰다는, 이건 장난꾸러기 애나 다름없구나 싶은, 어처구니없는 초빙공모제교장 얘기도 들렸다. 그 교장은 예상대로 학년배정, 업무분장까지 독단적으로 정했다고 한다.

 

벼룩 이야기로 돌아가자. 교사들이나 부모들은 아이들을 저 어항 속 벼룩처럼 다루고 있지나 않은지, 얼마든지 뛰어오를 수 있는 아이들까지 획일적으로 그저 그만큼만 뛰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교사들과 부모들이 함께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러나 교장이 교사들을 저 어항 속 벼룩처럼 관리하고 있지나 않은지, 더 창의적으로 가르치고 활동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교사들을 저 어항 속 벼룩처럼 가두어 두고 있지나 않은지도 걱정스럽다.

 

심각한 주제는 또 있다. 교장들 중에 저 벼룩 같은 존재가 있다면 그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 어항 속에서 저 벼룩처럼 뛰고 있는 멍청한 교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 장난처럼 혹은 주제넘게 교사들을 모아놓고 제비뽑기나 시키고 하릴없이 학교 주차장 관리나 하고 앉아 있는 한심한 교장들은 누가 가르쳐도 새로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교장이란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 사람인지라도 분명하게 인식시켜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