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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석홍이의 눈물」

by 답설재 2018. 8. 17.

 

2018.5.22. 양재대로

 

 

석홍이의 눈물

 

 

석홍이가 운다.

말썽쟁이 석홍이가 운다.

 

하루도 싸우지 않는 날이 없고

툭하면 여자애들을 울려

선생님께 매일 혼나도

 

울기는커녕

오히려 씨익 웃던 석홍이가

 

책상 밑으로 들어가

눈물을 닦는다.

주먹으로 쓱쓱 닦는다.

 

저 땜에 불려 나와

선생님 앞에서

고개 숙인 아버질 보고.

 

 

―정은미(1962~ )

 

 

 

출처 :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동시'(2018.8.1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15/2018081502741.html?utm_source=urlcopy&utm_medium=share&utm_campaign=news

 

 

 

 

 

1

 

초등학교 1학년 준이는 교회 사찰집사 아들입니다.

아빠는 양말, 장갑 등 양말 공장 물건을 자전거로 배달해주는 일도 합니다. 양말을 갖다 주러 가다가 차에 치여 엄청 다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양말을 아무리 열심히 배달해도 치료비나 될까 싶었습니다.

준이네 아빠 엄마는 어느 부모 못지않게 준이를 사랑하지만 둘이서 자주 다투었는데 아마도 워낙 가난해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아빠와 엄마가 다투면 준이네 선생님은 용하게 알아맞힙니다. 그게 준이 얼굴에 다 쓰여 있게 되고 때로는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아침도 먹지 못하고 등교하는데, 선생님은 그런 일에는 귀신이어서 한 번 척 둘러보면 준이가 아침을 먹었는지 굶었는지 당장에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꾸 그런 일이 일어나니까 어느 날 아침에 선생님께서 갑자기 소리를 '빽' 질러버렸습니다.

"엄마 아빠 학교에 오시라고 해!!!"

 

 

2

 

공부를 마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오후, 선생님은 학교 일에 파묻혀 정신이 없었는데 준이네 엄마 아빠가 교실로 들어섰습니다. 두 사람 다 고개를 숙이고 바람처럼 슬며시 들어섰는데 선생님은 일을 하느라고 그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지 들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사실은 그들이 교실로 들어섰는지 말았는지도 모른 채 한참 동안 일을 더 하다가 마침내 다소곳이 서 있는 두 사람을 보고 그만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님 자신은 아이들에겐 '귀신'이지만 진짜 귀신이라면 누구라도 무서워할 것은 당연한 일이어서 그 순간 귀신이 나타났나 싶어 진짜로 놀란 것이었습니다.

"으윽~!"

그렇지만 그 두 사람은 선생님이 "으윽~!" 하고 내지른 소리가 놀라서 낸 비명인 줄은 몰랐고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학부모 면담을 그렇게 시작한 줄로만 알았습니다.

 

 

3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선생님은 한참 만에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왜 자꾸 싸워요! 응?"

"……."

"싸우려면 둘이서 싸우지 왜 자꾸 준이 보는 데서 싸워요, 응!"

"……."

"도대체 왜 싸우는지 이유나 들어봅시다! 왜 싸워요?"

"……."

 

무슨 소리를 해도, 몇 번을 물어도 두 사람이 아무 말을 하지 못하자 선생님은 마치 신이 난 것처럼, 혹은 가정법원 판사도 아니니까 아이들이나 가르치면 됐지, 가르치는 일과 별 관계도 없는 이런 일에까지 관여해야 하는지 짜증이 나서 '너 잘 만났다!'는 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그렇게 물은 것을 또 묻고 또 묻고,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혼자 열이 나서 여남은 번을 물었는데, 물을 때마다, 그러니까 혼자서 고함을 지를 때마다, 본래도 큰 그 목소리가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4

 

한참을 혼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 선생님은 제풀이 힘이 빠졌습니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대답을 충분히 들었다는 듯 마지막으로 해결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이제 그만들 싸워요! 알았어요?!"

"……."

"아, 알았어요, 몰랐어요!"

"예~."

"'예'라니요! 알았다는 거예요, 몰랐다는 거예요?"

"알았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선생님."

아빠 엄마는 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이제 보니까 두 사람은 여태 자리에 앉지도 못한 채 그렇게 서서 꾸중(?)을 다 들은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두 사람이 그 자리에서 손을 잡게 했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놓고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모습, 교문을 나서는 모습을 지켜보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당신이 뭔데 그래요! 응?"

"우리가 준이처럼 당신 제자도 아니잖아. 근데 왜 그래요?"

두 사람이 그렇게 나왔더라면 어떻게 했을지,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5

 

준이는 이젠 아침을 굶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담임선생님께 아빠 엄마가 또 싸웠다는 얘기를 할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 준이가 중학교 1학년이 되어 전철역 공사장의 가스가 폭발해서 죽은 이야기는 '살아 있을 때라도 사랑해주자'는 제목으로 쓴 적이 있습니다(http://blog.daum.net/blueletter01/7637277). 준이네 담임은 그 아이가 그렇게 일찍 죽어야 한 것에 대해서는 누구의 어떤 설명도 듣고 싶어 하지 않으며 살아왔습니다.

어언 30년 전의 일이 되어 이젠 생각이 나도 눈물을 흘리진 않지만 죽어 저승에 가면 준이는 꼭 만나봐야 한다고 매번 다짐하고 있는데, 레테의 강인지 뭔지 그걸 건너갈 때 이승의 일들을 다 잊어버린다는 얘기가 있어서 그게 사실인지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준이네 담임은 어제 신문에서 동시 '석홍이의 눈물'을 읽으며 그때의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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