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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새해맞이 꿈

by 답설재 2018. 2. 18.

 

 

 

 

 

 

    1

 

인터뷰를 마칠 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고 인사하는 연예인이 있다. 그쪽에서 나를 알 리가 없는데도 실없이 '인사를 하는군' 하고 그 인사를 받을 때가 있다. 12월 말부터 1월 초순까지 이어지는 그런 인사는 잠시 주춤하다가 설날을 전후하여 또 이어진다.

어처구니가 없다. 무슨 새해가 그렇게 오래 시작되는가 싶은데, 연예인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근래에는 새해 인사를 하는 연예인이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새해가 그렇게 오랫동안 '시작'되어도 나는 정신을 좀 차리는 편이다. 아직도 음력이라니, 어쩌면 끈질긴 것일까? 새해맞이 꿈을 굳이 음력 섣달그믐 밤에 꾸는 것이다.

 

 

    2

 

오랫동안 그 꿈은 대체로 어수선한 것들이었다. 버젓한(?) 노인은 아니더라도 노인은 노인이니까 풋풋한 꿈을 꿀 리가 없고 그런 꿈을 기대하는 것조차 염치없는 일이어서 아예 풋풋한 꿈을 기대하진 않는다.

어수선한 꿈이나 꾸고 어수선한 한 해를 보내는 게 마땅한, 어쩔 수 없는 나이겠거니 하는 것이다.

 

 

    3

 

이번 섣달그믐 밤에도 나는 또 어수선한 꿈을 꾸었다. 자정을 지나서 꾸었다면 설날 새벽꿈인가?

그런데 이런저런 일들이 얽히고설킨 듯한 느낌을 주는 그 꿈의 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대체로 바로 떠올리지 못하면 설날 오후에는 생각나고 심지어 초이튿날, 초사흗날이라도 떠올리게 되는데 이번에는 오늘, 초사흘 밤이 되도록 생각나지 않았으니 아무래도 그 꿈을 기억해 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리고 만 것 같다.

 

 

    4

 

어수선한 꿈에 이력이 난 것일까?

그 어수선한 꿈들은 기억해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어느 순간 기어이 생각나는 것이긴 하지만, 이번 정초에 나는 그 어수선한 꿈을 차라리 외면하고 싶어 하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꿈이 어수선하지 않으면 한 해 동안의 일들도 어수선하지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한 것이 분명하다. 나는 지금 나의 한 해가 시시하더라도 어수선하진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시시하긴 해도 어수선하진 않은 한 해, 그게 나의 바람이다.

그래, 시시한 한 해, 그렇지만 어수선하진 않은 한 해를 보내면서 차근차근 마음의 정리를 시작하면 좋은 한 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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