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의 영미시 산책
《생일》
비채 2006
내 생일인데 저희들끼리 얘기하고 떠들고 웃고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섭섭한 건 다만 그 생일이 또 지나가버린 것입니다.
내년에도 또 맞이할 수 있겠지요.
가만두어도 저희들끼리 얘기하고 떠들고 웃고 하는 그 '축하'.
한 해에 딱 한 번인 그 축하가 미안합니다.
A Birthday
Christina Rossetti
My heart is like a singing bird
Whose nest is in a watered shoot;
My heart is like an apple tree
Whose boughs are bent with thickset fruit;
My heart is like a rainbow shell
That paddles in a halcyon sea;
My heart is gladder than all these
Because the birthday of my life
Is come, my love is come to me….
그리운 장영희 선생은, 이 시를 맨 먼저 소개했습니다.
생일
/ 크리스티나 로제티
내 마음은 물가의 가지에 둥지를 튼
한 마리 노래하는 새입니다.
내 마음은 탐스런 열매로 가지가 휘어진
한 그루 사과나무입니다.
내 마음은 무지갯빛 조가비,
고요한 바다에서 춤추는 조가비입니다.
내 마음은 이 모든 것들보다 행복합니다.
이제야 내 삶이 시작되었으니까요.
내게 사랑이 찾아왔으니까요.
그대 만난 뒤에야 내 삶은 눈떴네
누군가 내게 불쑥 내미는 화려한 꽃다발 같은 시입니다.
진정한 생일은 육신이 이 지상에서 생명을 얻은 날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다시 태어난 날이라고 노래하는 시 〈생일〉, 글을 쓸 수 있기 전에 이미 시를 썼다는 크리스티나 로제티가 스물일곱 살 때 쓴 시입니다. 사랑에 빠진 시인의 마음은 환희와 자유의 상징인 새, 결실과 충만의 상징인 사과나무, 평화와 아름다움의 상징인 고요한 바다와 같이 너무나 행복하고 가슴 벅차서, 스물일곱 나이가 까마득히 먼 꿈이 되어버린 내 마음까지 덩달아 사랑의 기대로 설렙니다.
내 육신의 생일은 9월이지만, 사랑이 없으면 생명이 없는 것이라는 〈생일〉을 읽으며, 나도 다시 한 번 태어나고픈 소망을 가져봅니다. 저 눈부신 태양을 사랑하고, 미풍 부는 하늘을 사랑하고, 나무와 꽃과 사람들을 한껏 사랑하고, 조제티처럼 "My love is come to me!"라고 온 세상에 고할 수 있는 아름다운 4월의 '생일'을 꿈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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