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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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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롤랑 《베토벤의 생애》

by 답설재 2017. 10. 30.

로맹 롤랑 《베토벤의 생애》

이휘영 역, 문예출판사 1996(증보판 11쇄, 초판 1972)

 

 

 

 

 

 

1802년의 「유서」에 베토벤은 6년 전에―즉, 1796년에 귓병이 났다고 쓰고 있다. 베토벤의 작품 일람표를 보면 1796년 이전의 것으로는 작품 제1번인 삼중주곡 셋밖에 없다. 작품 제2번, 즉 피아노를 위한 최초의 세 소나타는 1796년에 발표되었다. 그러므로 베토벤의 전 작품은 베토벤이 귀가 어두워진 뒤에 쓴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베토벤의 귓병에 관하여서는 1905년 5월 15일의 《의학시보(醫學時報, Chronique médicale)》에 게재된 클로쯔 포레스트 박사의 논문 참조. 이 논문의 필자는 베토벤의 병의 근원이 유전성 허약 체질(아마도 어머니의 폐결핵)에 있었으리라고 보고 있다. 그는 1796년에 귀의 나팔관 카타르를 진찰하였는데, 이것이 1799년경에 급성 중이염으로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치료가 제대로 되지 못하여 중이염은 만성이 되고 이에 따르는 모든 결과가 일어났다. 완전히 귀머거리는 되지 않았으나 귀는 더욱더 어두워 갔다. 베토벤은 높은 소리보다도 낮은 소리를 비교적 잘 들을 수 있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만년에 그는 나무 토막을 사용하였었는데, 그 한 끝을 파아노 속에 넣고 또 한 끝은 이빨 사이에 물고 있었다고 한다. 작곡(作曲)을 할 때는 이런 방법을 써서 소리를 듣곤 하였다.

(이 문제에 관하여는 다음의 문헌 참조―C.G.Kunn: Wiener medizinische Wochenschrift, 1892년 2,3월호―Willibald Nagel: Die Musik, 1902년 3월호―Theodor von Frimmel: Der Merker, 1912년 7월)

본에 있는 「베토벤 박물관」에는 1814년경에 기계기사 멜젤이 베토벤을 위하여 만든 보청기가 보존되어 있다.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遺書)는 이렇게 끝난다.1

 

어떠한 정복이, 보나파르트의 어떤 전투가, 오스텔리쯔의 그 어떤 태양이 초인적 노력과 이 승리―일찌기 「정신」이 싸워 얻은 가장 찬란한 이 승리의 영광에 필적할 수 있으리요! 불행하고 가난하고 불구이고 고독한 사람, 마치 고뇌로써 빚어진 것 같은 사람, 세상에서 기쁨을 거절당한 그 사람이 스스로 「환희」를 창조한다―그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그는 자기의 불행으로써 「환희」를 만들어 낸다. 그것은 그가 다음과 같은 자랑스러운 말로 표현한 바와 같거니와, 이 말에 그의 생애는 요약되어 있는 것이며, 이 말은 또한 영웅적인 모든 넋의 금언(金言)이기도 한 것이다――

「괴로움을 돌파하여 기쁨으로! (Durch Leiden Freude)」 (7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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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5), 베에토벤의 생애(15),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遺書)(75), 베에토벤의 편지(89), 베에토벤의 사상단편(思想斷片), 베에토벤에 대한 감사(121), 베에토벤의 수기(手記), 문헌(文獻)

 

 

 
베에토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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