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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70대의 시간

by 답설재 2017. 6. 29.

 

그 저녁에 노인이 분명한 내 친구 K와 함께 바라본 카페 "자작나무"의 밤

 

 

 

 

    1


"(…) 여기 주위에서 보는 미국 노인들에게서, 노인이라고 내세우는 것 같은 유난스러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유난스러웠다면 오히려 대하기의 편안함이 그랬다. 그래선지 젊은이들은 노인들에게 기분 좋아질 정도로 깍듯한 것 같다.  나이 들면서 언제부턴가 느릿느릿 걸어야 하면 그냥 그렇게 걸으면 되는 것뿐이다. 마치 다 산 것처럼 행세하는 노인도 못 봤다. 일을 계속하고 싶고 그럴 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그냥 쉬고 싶으면 쉬고, 자원봉사도 하고들 그런다. (…)"

 

Denver Post》(2017.6.26)의 기사 "Colorado postman’s 60-year tenure on a long, rural route filled with wonder"를 소개한 블로그 《삶의 재미》의 글을 읽었다.(☞ http://blog.daum.net/dslee/918)

 

 

    2

 

사는 건 날이 갈수록 어렵다. 우선 간단하지 않다.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공자)" 같은 말씀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멀다.

끔찍하였다. 인용문의 저 몇 마디가 나 보라고 하는 말 같았다.

 

 

    3

 

재미있는 책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에서 찰스 부카우스키는 이렇게 썼다.1

 

마장에 나가 있으면 시간이 정말 죽어나간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오늘, 두 번째 경주에 나서려고 그들이 출발대로 다가가고 있었다. 아직 3분이 남았기에 말들과 기수들은 느릿느릿 다가가고 있었다. 무슨 까닭인진 몰라도 내게는 괴롭도록 긴 시간으로 느껴졌다. 70대가 되고 보면 누가 내 시간을 마구 다루는 게 예전보다 더 속상하다. 물론, 그런 입장을 자초했다는 걸 난 잘 안다.

 

누가 내 시간을 마구 다루는 게 느껴지면 나도 참 속상하다.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게 된다. 내가 자초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더욱 약이 오른다. 가령 문인으로 등단한 사람은 내가 장기간 그의 글을 읽어주었어도 절대로 비문인(非文人)인 내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

내가 혹 잘못 인식하는 것일 수도 있긴 하다. 내 시간을 마구 다루는 게 느껴지는 건 주로 이 블로그에서이기 때문이다.

 

 

    4

 

그 문인이 내 이름을 언급한다고 해서 무슨 수가 나는 것도 아니다.

그럼, 늙음과 질병, 죽음…… 같은 것에 대해 어떤 글을 써놓으면 꼭 덤벼드는 사람이 생기는 건? 그들은 "어린애처럼 그러지 말고 즐겁게 지내라. 너만 늙는 건 아니다." "내 곁으로 오라. 좋은 수가 있다." 혹은 "내 글의 맞춤법2이 당신의 파란편지만큼 정확하지 않은 건 이상하다. 억울하다"…… 는 식이다.

 

그럴 때 나는 꼭 직설적이다.

"당신도 나만큼 살아보라!(그러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열심히 한 게 그나마 맞춤법뿐이다."

"……."

 

 

    5

 

저 찰스 부카우스키는 이렇게도 썼다.

 

어찌 됐든 내겐 염병할 경마가 있다. 난 언제라도 경마에 관해, 그 거대한 정체불명의 빈 구멍에 관해 쓸 태세가 돼 있다. 내가 거기 가는 건 나 자신을 희생물 삼고, 시간의 사지를 잘라내고 죽이기 위해서다. 시간을 죽여야만 한다. 기다리는 동안, 완벽한 시간은 이 기계 앞에 앉아 있을 때다. 그러나 불만족스러운 시간이 없인 완벽한 시간도 얻을 수 없다. 열 시간을 죽여야만 두 시간을 살릴 수 있으니까 주의해야 할 게 있다. 시간을 모두 다, 세월을 모두 다 죽이면 안 된다.3

 

찰스 부카우스키도 덴버의 저 집배원을 훌륭하다고 할 것은 분명하다. 당연하다. 그러나 그 이유를 짐작하고 설명하는 건 간단한 작업이 아닐 것이다.

그것보다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무엇보다 부카우스키 자신도 '두 시간'을 위해 '열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만 그 '두 시간'마저 내어줄 수는 없을 뿐이다.

그러므로 『삶의 재미』의 저 글을 세심하게 읽는 것이 좋겠다.

 

 

 

  1. 언더그라운드의 전설 찰스 부카우스키의 말년 일기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Henry Charles Bukowski, The Captain is Out to Lunch and Sailors Have Taken Over the Ship(1998) 찰스 부카우스키, 로버트 크럼 그림, 설준규 옮김, 모멘토 2015, 123. [본문으로]
  2. 내 맞춤법이 비교적 정확하다면 나는 그걸 위해 온 정력을 바치며 나이를 먹은 까닭이다. [본문으로]
  3. 위의 책, 13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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