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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뇌세포를 학대하는 교육은 배임행위

by 답설재 2017. 6. 25.






뇌세포를 학대하는 교육은 배임1행위






    1


  바로 아래층에 사는 대학생 K는 그 S대가 아닌 다른 S대 국문과 2학년입니다.

  재수를 할 때도 희희낙락이었고 진학해서도 즐거움을 찾는 것이 최종 목적인 학생으로 지냅니다.


  녀석도 별 수 없이 시험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하루는 뭘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내일 월요일 아침 10시까지 陶淵明의 歸去來辭를 원문 그대로 암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백지에 그 원문을 그대로 쓰는 것이 중간고사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래, 얼마나 외웠는지 들여다봤더니 "아이고야! 아직 시작 부분이네?" 그 이상 간섭하면 밉겠구나 싶어서 얼른 돌아서며 생각했습니다. '내가 저걸 다 외우면 이럴 때 한번 본때를 보일 수 있을 텐데……'

  중간고사 문제를 그렇게 출제하겠다고 아주 대놓고 제시한 그 교수는 참 좋겠다 싶기도 했고, 암기에 대한 혐오증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런 좋은 문장은 아예 외우는 게 좋긴 하겠지?'



    2


  얼마 전에 읽은 『하버드 학생들은 더 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암기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을 찾아보았습니다.2


  가드너는 학생들이 향후에는 생각하는 방법에 훨씬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3 그런데 구글을 검색하면 무엇이든 찾아낼 수 있는데 굳이 뭔가를 암기하려고 뇌세포를 학대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가드너의 주장에 따르면, 여러 문화가 서로 접촉하며 다양한 의견과 분야와 학문이 충돌하는 환경에서 최적의 생각법이 탄생한다. 똑같은 맥락에서, 가드너는 고전을 이용한 학습법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는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그의 관점에서, 교육의 요점은 학생들의 머리에 고전적인 지식을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지적인 능력을 함양하는 걸 돕는 것이다.4 따라서 가드너라면, 학생들에게 관찰, 분석, 미학, 팀워크 등을 중시하며 다양하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커리큘럼을 옹호할 것이다. (…) 가드너는 심리학과 신경과학에 대한 지식을 근거로 "교육이 과거 회귀적이고, 정신이 지식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또 어떻게 복구하는지에 대해 현재 알려진 내용조차 무시하는 방향으로 짜여진다면 배임행위에 가깝다"라고 주장했다.5


  여기에 옮겨놓은 부분에서 이야기하는 가드너의 출처는 다음과 같고 각주의 내용도 번역본에서 그대로 옮겼습니다.


  Howard Gardner, The Disciplined Mind: Beyond Facts and Standardized Tests, the K-12 Education that Every Child Deserves (New York:Penguin, 2000)



    3


  『평행 우주 속의 소녀』에서 읽은 부분도 생각나서 찾아보았습니다.6


  파인만의 목적은 이런저런 물리학의 법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 단언했다. "바보만이 물리학이 모든 법칙을 외우려 할 것이다. 만약 전부 외웠다고 할지라도 자연에 관한 직관적인 이해는 없는 법칙으로 가득 찬 머리만 남을 뿐이다. 자연에 관한 직관적인 이해가 있어야 잊어버린 방정식을 유도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새로운 법칙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를 마주했을 때 데이터를 어떤 방정식에 끼워 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눈을 감고 문제에 나오는 대상이 이동하고 상호작용하는 것을 직관적으로 마음속에 그려보아야 한다. 파인만에게 먼저 왔던 것은 영상, 즉 춤과 같은 운동성이었다. 그는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분명해진 후에야 수학을 통해 그의 직관과 소통하려 했다.




                                                                                                                                   2014.12.22.







  1. 주어진 임무를 저버리거나 임무의 본래 뜻에 어긋남. 주로 공무원 또는 회사원이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국가나 회사에 재산상의 손해를 주는 경우에 쓴다.(DAUM 사전) [본문으로]
  2. 파리드 자카리아 지음, 강주헌 옮김《하버드 학생들은 더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 In Defense of a Liberal Education》(사회평론 2015), 97~98. [본문으로]
  3. Howard Gardner, The Disciplined Mind: Beyond Facts and Standardized Tests, the K-12 Education that Every Child Deserves (New York:Penguin, 2000), 126. [본문으로]
  4. Gardner가 자신의 교육관과 '문화적 소양'을 강조하는 교육자인 E. D. Hirsch의 교육관을 비교한 부분을 참조할 것. The Disciplined Mind, p.252~260. [본문으로]
  5. 위의 책, p.260. [본문으로]
  6. 아일린 폴락 『평행 우주 속의 소녀 The on ly Woman in the Room』(한국여성과총 옮김, 이새, 2015), 126 및 127.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