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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A학점 '성적기계' 뽑지 마라"

by 답설재 2017. 5. 30.

1

 

"A학점 '성적기계' 뽑지 마라"

기사 제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하지 마라!" 누가 누구를 상대로 한 '지시사항' 같은 건 거부감을 주지만 양해하고 보았습니다.

"학교 다닐 때 좋은 성적 얻는 데만 혈안이었던 '기계 같은 인간'을 뽑지 마라!"

 

그런 지시사항이라면 누가 선뜻 들어줄까요?

누가 누구에게 부탁한 것일까요?

―아주 센 사람이 대기업 대표들에게?

―대기업은 제쳐놓고 우선 중소기업 사장들에게?

―힘도 없는 동네 슈퍼마켓 주인들에게?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2

 

그럼 대학에서는? 저 부탁대로 우선 대학에서 '성적기계'를 배출하는 데 힘쓰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이상하게 돌아가지 않을까요? "성적? 그게 뭐 중요하다고……. 대기업부터 A학점 받은 졸업생을 '기피'하는데(혹은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데)……."

쉽게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럼 대학에서는 '성적기계'를 배출하더라도 기업에서는 외면하라고?

 

대학에서 신입생을 뽑을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저 주문대로라면 고등학교에서 공부에만 집중한 학생을 중시해서 뽑을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좋을까요?

일전에 『하버드 학생들은 더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 In Defense of a Liberal Education』라는 책에서 답이 될 만한 글을 보았습니다.*

 

언젠가 나는 아이비리그에 속한 한 대학의 입학 사정 책임자에게 "고등학교에서 그다지 좋지 못한 성적을 받은 아이들도 받아들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지체없이 "천만에요. 그런 아이들은 좋은 성적을 받은 지원자에 비해서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실패에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실패를 딛고 회복하느냐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 즉 개개인의 미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자질이라고 지적했다. 그 입학 사정관도 교육을 깊이 연구한 학자답게 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성적증명서와 SAT 성적 등 어떤 부분에서든 실패한 지원자를 받아들이면 학교의 순위가 떨어지고 경쟁 대학에 비해 '승패율'(두 대학으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은 학생이 특정 대학을 선택할 확률)도 떨어진다고 대답했다. (……)

 

 

3

 

기사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로보 사피엔스'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제패는 시작일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너무 빠른 '미래의 속도'는 불안을 동반한다. 존 체임버스 시스코 회장은 "현존 기업 중 40%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고, 일자리 500만 개 소멸 등 온갖 경고가 난무한다. 낡은 것의 청산에 몰두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가.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한국경제신문사 공동 주최로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파르나스호텔에서 오는 10월31일~11월2일 열리는 '글로벌 인재포럼 2017'이 '우리가 만드는 미래(Future in your hands)'를 올해 주제로 택한 이유다.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명언을 인용해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학계와 정부, 경영계, 연구기관 전문가로 구성된 37명의 인재포럼자문위원단은 26일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정례회의를 열어 "4차 산업혁명 파고를 넘으려면 인재 혁신이 해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은 '지식기능공'만 양산하는 교육을 바꾸려면 "대기업부터 A학점 '성적 기계'를 뽑지 말아야 한다"며 역발상 혁신을 제안했다.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강조하다 보면 사람은 간 데 없고 기술만 남는다"며 "사람의 통찰력을 키워주는 인문교육도 긴요하다"고 말했다.

 

 

4

 

우리나라 교육학자(학자)나 행정가, 기업인들은 깜짝깜짝 놀랄 만한 생각들을 자주 발표합니다. 그런 것으로 보면 우리나라가 세계적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교육은, 우리의 교육은 거의 변함이 없습니다. 평가 중심이고 대입전형 중심이고, 획일적 수업과 강의 중심, 암기 중심입니다. 대학생들이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을 보는 모습은 답답할 정도로 우리가 겪은 그대로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대기업부터 A학점 '성적 기계'를 뽑지 말아야 한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경천동지할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심지어 저렇게 주장해 온 학자들, 행정가들, 기업인들조차 '어! 진짜로 그렇게 한다고?' 스스로도 놀랄 것이고, 우리 교육에도 엄청난 변화가 일시에 몰려올 것입니다.

 

 

5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하고, 내일도 A학점, A++학점을 위한 경쟁은 여전할 것입니다. 많이 암기하는 공부가 주효할 것이므로 학생들이나 교수들이나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을 것입니다.

 

혹 고려대학교나 포스텍 총장이 그렇게 한다면? 학점 경쟁도 달라지고 입학사정도 다르게 한다면?

글쎄요,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고려대나 포스텍을 지원하고 싶은 고등학생들이 "정말 그렇겠는가?"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뭐, 그 두 대학이라도 그렇게 한다면 정말 정말 고마운 일이긴 하겠지요? 행복한 일, 우리가 그리워 한 일들이 일어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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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드 자카리아 지음, 강주헌 옮김《하버드 학생들은 더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 In Defense of a Liberal Education》(사회평론 2015), 193~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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