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이런 학교가 다 있다니…

by 답설재 2017. 3. 24.







                                                                                                                    2017.2.15.





'이런 학교가 다 있다니…'

(중학교 마지막 구술시험)






  그러다 보니 어느덧 내 차례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교실에 들어가면서 말했다. 책상은 말발굽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교실은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작았다. 밤사이에 벽돌이 이동한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먼지투성이 창문들로 강렬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창문 밖으로 운동장이 환히 내려다보였다. 나는 탈출 경로를 찾아 이 교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사방이 막혀 있었다.

  "오! 우리 마차리올이구나."

  기술, 미술, 이탈리아어, 음악, 종교와 영어 선생님이 긴장을 풀어 주려는 듯 일제히 말했다.

  심지어 그중 몇 분은 미소를 지으셨는데 덕분에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오! 우리 마차리올이구나."

  수학, 체육, 과학 선생님이 마치 바퀴벌레를 발견한 듯 큰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들은 등을 곧게 펴고 펜을 칼처럼 쥐었고, 흘러내린 안경을 밀어 올렸다. 몇 분은 내게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교과서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들 가운데 역사 과목이 타소 선생님이 있었다. 타소 선생님은 내 인사를 받아 주지 않았다.

  "무엇에 대해 준비했니?"

  타소 선생님은 내 얼굴을 보지도 않고 질문했다.

  "먼저, 앉아도 될까요?"

  원래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오만한 말투로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그런 말을 내뱉은 것을 바로 후회했다. 만약 의자에 앉지 못했다면 나는 실신했을 것이다.

  타소 선생님은 내게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선생님들 앞으로 의자를 바짝 끌어당기며 앉는데 의자가 바닥에 끌리면서 소름끼치는 소리가 났다.

  "시작해 보렴."

  타소 선생님이 이마를 찡그리고 손끝으로 책상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제 연구의 주제는……."

  타소 선생님은 헛기침을 하더니 핸드백에서 사탕을 꺼냈다.

  "설득의 기술에 관한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들은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고, 확신에 찬 동의의 시선을 서로 교환했다. 반면에 내가 싫어하는 선생님들은 입술을 콜리플라워처럼 동그랗게 말고 있었다.

  "계속해 봐."

  타소는 툴툴거렸다.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 준비해 온 이야기를 어느 정도 발표했다.

  첫 번째 단계는 그럭저럭 넘어갔으나 이제부터는 심화 단계다. 과목별로 내 주제에 대한 질문을 시작할 것이다. 나는 마치 점수를 결정하는 꽃을 손에 들고 '나를 사랑한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를 되뇌면서 꽃잎을 떼어내고 있는 기분이었다. 좋은 선생님의 질문 하나, 나쁜 선생님의 질문 하나. 물론 좋은 선생님과 나쁜 선생님은 내 편이냐 아니냐에 따라 결정된다.

  과학 선생님은 내 연구가 신경계와 관계가 있는지 물었다.

  '설득의 기술과 신경계라고?'

  나는 생각했다.

  '무슨 관계가 있지?'

  나는 긴장한 체로 설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이 신경계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일단 '관계가 있다'고 대답했다. 왜냐하면 과학 선생님이 그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별 성과도 없이 뒤죽박죽된 문장들을 한참 늘어놓은 후에 선생님은 내게 그만하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접시에 빠진 파리를 꺼낸 것처럼 기뻐하며 종이에 무언가를 쓰려고 몸을 숙였다.

  좋은 선생님인 기술 선생님은 내 연구를 어떤 재료에 담아 왔는지 물었다. 함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마음을 굳게 다잡은 뒤 나는 말했다.

  "종이……."

  기술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체육 선생님은 화살의 움직임에 대해서 물었다. 나는 아빠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활을 쏘는 사수와 활을 쏘는 움직임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가 '사수자리'라는 단어를 다 말하기도 전에 손짓을 하며 내 말을 막았다.

  음악과 미술은 잘했고 영어는 아주 잘했다. 반면 수학은 아주 처참했다.

  드디어 역사과목 순서가 되었다. 타소 선생님은 차콜 그레이 색깔의 블라우스와 녹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질문하기 전에 타소 선생님은 안경 너머로 오랫동안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숨을 죽였다. 머릿속에서 사막에서 휘몰아치는 바람에 휩쓸려 가는 건초 더미 소리와 코요테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특별히 말하고 싶은 주제가 있니?"

  타소 선생님은 휘파람을 불었다.

  "음, 바로 설득의 담론이죠. 예를 들면, 리비아 정복 후 이탈리아의 프로파간다 활동과 연결할 수 있어요."

  "그래서 너는 1차 세계 대전 때 리비아 정복에 대해서 준비했니?"

  "네."

  "좋아. 그럼 2차 세계 대전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내가 리비아 정복에 대해서 준비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논제 중에서 내가 제일 모르는 부분이었는데, 미리 공부했다고 말하면 타소 선생님이 질문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해서 한 말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2차 세계 대전이라니? 나는 2차 세계 대전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히틀러가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한 해는 몇 년도이지?"

  패닉.

  주변의 모든 소음이 차단되었다.

  우주로부터 방사선이 내려쬐는 것 같았다.

  히틀러, 러시아, 히틀러는 독일을 상징한다. 러시아는 러시아다. 2차 세계 대전. 1939년에서 1945년까지. 독일은 분명히 러시아에 적대적이었다. 나의 뇌는 잠시 동안 윌리 윙카의 초콜릿 공장1으로 변했다. 움파룸파족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솜사탕이 계속 풍부하게 공급되었다. 한 대화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를 때까지……. 비토2, 교통안전을 주제로 한 강연회, 우연의 일치에 관한 대화. 그리고 숫자 129가 떠올랐다. 히틀러와 나폴레옹의 업적이 129년 차이가 난다고 했었다. 아까 고스3가 말한 게 뭐였더라? 나폴레옹이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했던 해는 1812년. 따라서 히틀러는 129년 후에 같은 일을 했다. 1812와 129를 더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계산기 없이 1812에 129를 어떻게 더하지? 무시무시한 계산이었다.

  "마차리올."

  타소 선생님이 말했다.

  "네?"

  "시간이 더 필요하니?"

  "네."

  '1812 더하기 129. 빌어먹을, 생각해 봐. 침착하게 생각해 봐. 1812 더하기 100은 1912. 20을 더하면 1932.'

  나는 내 자신에게 말했다.

  "우리는 하루 종일 기다릴 수 없어. 마차리올. 히틀러가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한 해!"

  "그러니까…… 잠시만요……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1932 더하기 9, 1932 더하기 9…… 1943. 1943? 아니야. 1941.'

  "마차리올. 더는 안 되겠……."

  "1941년요."

  나는 말했다.

  놀란 타소 선생님은 어깨를 뒤로 젖히고 간신히 눈을 떴다. 웃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입술에 약간의 경련이 일어났다.

  "계속해 봐."

  타소 선생님은 말했다.

  다음 순간 나는 논리적인 전개뿐만 아니라 수학적 사고가 이루어 낸 영광스러운 성과에 전율이 흘러 문자 그대로 계속 얘기했다. 하고 싶은 말이나 할 말이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아빠의 조언을 떠올리며 당당한 태도를 유지했다. 누군가가, 심지어 타소 선생님이 또 다른 질문을 하려고 내 말을 중단시키지 못하도록 2차 세계 대전과 막연하게라도 관계가 있는 사건과 사실을 연결시키면서 자신만만함을 보여 주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 타소 선생님이 나를 향해 손바닥을 들어 올리고 눈을 반쯤 감고 말했다.

  "좋아. 마차리올. 그 정도면 됐어. 그만 가도 좋아."

  나는 일어나서 디플로도쿠스처럼 의기양양하게 교실을 나가 운동장으로 내려갔다. 온 세상에 기쁨의 실타래가 풀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 자코모 마차리올 지음, 임희연 옮김, 『아이큐 50 내 동생, 조반니』(걷는나무, 2016), 197~204쪽에서.



  이런 학교에서 공부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렇게 공부했다면 나는 지금 어떤 유형의 인간이 되어 있을까 싶었다.


  주제넘지만 이런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런 학교라면 나는 어떤 유형의 교사였을까 싶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말기로 했다.

  '세상엔 이런 학교도 있구나…….'








  1. 윌리 윙카는《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등장인물로 세계 최고의 초콜릿 공장 소유주다. 윌리 윙카의 초콜릿 공장은 초콜릿 폭포가 흐르고, 거대한 초콜릿 공장이 있는 등 놀랍고 환상적인 곳이다. 움파룸파족은 이 공장에서 일하는 쾌활한 성격의 난쟁이족으로 춤과 노래를 좋아한다.(이 책 202쪽의 주) [본문으로]
  2. 친구 이름. [본문으로]
  3. 시험장에 들어오기 전 운동장에서 만난 친구 이름. [본문으로]

'학교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A학점 '성적기계' 뽑지 마라"  (0) 2017.05.30
MOOC 공부  (0) 2017.05.09
게임중독  (0) 2017.02.06
"교장을 뽑습니다!"  (0) 2017.01.19
9년 만의 답글  (0) 2017.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