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르나르 Jules Renard
《박물지 Histoires Naturelles》
윤옥일 옮김, 동서문화사 2013
* 백조
그는 연못 위를 구름에서 구름으로 가는 흰 썰매처럼 미끄러져 간다. 왜냐하면, 그는 물속에서 생기고 움직이고 사라지는 솜털구름처럼 식욕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 구름 한 조각이다. 그는 부리로 겨냥하여 눈 옷을 입은 그 목을 갑자기 물에 담근다.
그러고 나서 여자의 팔이 소맷자락에서 나오듯 그는 목을 다시 쑥 내민다. 아무것도 잡지 못한다.
그는 바라본다. 구름은 놀라서 사라졌다.
실망은 오래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구름은 이내 돌아올 테니까. 정말 저 멀리 수면의 물결이 사라져가는 언저리에서 또 하나의 구름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가벼운 털방석을 타고 백조는 조용히 노를 저어 다가간다…….
그는 물에 비치는 허무한 그림자를 쫓다 지쳐, 구름 한쪽을 잡기도 전에 아마도 그 망상의 희생물이 되어 죽어버릴 것이다.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지?
그는 잠수할 때마다, 부리 끝으로 양분이 있는 진창 밑바닥을 쑤셔 벌레 한 마리를 물어낸다.
그는 거위처럼 살찐다.(201)
백조의 모습을 떠올리다가 '이건 詩!'라고 생각했다.
영상(影像)의 사냥꾼, 암탉, 수탉, 오리, 칠면조, 뿔닭, 거위, 비둘기, 공작새, 백조, 개, 두 마리의 개, 데데슈는 죽었다, 고양이, 암소……
그럴 수 없이 예리하고 섬세하다.
삽화가 하나씩 들어 있다. 흑백 시대의 초등학교 저학년 교과서처럼 글 한 편에 그림 하나씩, 노인인 나는 아직도 이런 책이 좋다.
아주 짧은 글도 있다.
시라고 생각하니까 그게 분명하다고 여겨졌다.
'염소는 독서광' '녹색 도마뱀' '개똥벌레' '데데슈는 죽었다'는 다음과 같다.
* 염소는 독서광
관청 벽에 붙여놓은 관보를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암염소는 다르다.
그녀는 뒷발로 일어나 앞발을 신문 아래 벽에 대고는, 뭔가를 읽는 할머니처럼 뿔과 수염을 움직이며, 머리를 양 옆으로 갸웃거린다.
책 읽기가 끝나면, 그녀는 먹음직스러운 신선한 풀 냄새 풍기는 신문을 뜯어먹는다. 마을의 소식들이 사라져버린다.(230)
* 녹색 도마뱀1
칠 주의!(239)
* 개똥벌레
1
무슨 일이 일어났나? 벌써 밤이 깊었는데, 아직 저 집엔 불빛이 보이네.
2
풀숲에 내린 달빛 한 방울
그 새들, 짐승들, 벌레들과 대화를 나누며 읽는 새 이건 소설인가 싶기도 했다.
* 데데슈는 죽었다
(……)
우리가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그는 말을 하지 못한다. 헛되이, 꼬마 아가씨는 그를 붙잡고 말한다. "네가 한마디라도 할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그는 그녀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몸을 떨며 바라본다. 그는 꼬리로 많은 말을 하고, 턱을 움직여 입을 열긴 하지만 짖지는 않는다. 그는 꼬마 아가씨가 짖는 것 이상을 바란다는 걸 알았던 것이다. 말은 그의 마음속에 있고, 거의 혀와 입술까지 올라 와 있다. 그가 조금만 더 살았더라면, 마침내 그의 입에서 말이 터져 나왔을지도 모른다.
들판에 달이 뜨지 않은 어느 저녁 데데슈가 길가에서 친구들을 찾고 있을 때, 틀림없이 밀렵꾼의 개였을, 우리가 모르는 어떤 커다란 개가 이 가냘픈 비단 실뭉치를 덥석 물어 뒤흔들고 깨문 다음 내던지고 도망가 버렸다.
(……)
그 짐승들, 새들, 벌레들이 무슨 말을 한 것은 아닌데도 마치 그것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그것들의 삶을 다 들여다본 것 같은 느낌? 그것들과 함께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살아온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을 교류라고 하는가? 어쨌든 그것들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의 이 세상'의 이면(裏面)에는 보다 살기 좋은 다른 세상이 하나 더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쥘 르나르는 83가지만 설명하고 있다.
"봐! 사물은 이렇게 봐야 하는 거야."
"……."
"여든세 가지나 되니까 이것만 해도 충분하겠지? 너도 한번 설명해 봐.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주문하는 쥘 르나르에게 나는 뭐라고 해야 하나…….
늦었다고? 늦지 않았겠느냐고?
그러면 그는 물끄러미 바라보겠지.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그렇게 대하는 것처럼…….
늦기는 늦었지, 아무래도…….
아직 나이를 나만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니면 남의 일은 소홀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그러겠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때야."
―"아직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왜 그래! 힘내! 인생은 칠십부터야……."
나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정말 싫어! 넌더리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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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건 본문(넉 자)보다 제목이 더 긴 예지만 다음과 같은 작품도 있다...
제목「어치」
내용 들판의 군수 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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