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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이야기

「봄요일, 차빛귀룽나무」

by 답설재 2016. 10. 19.

봄曜日, 차빛귀룽나무

 

 

박수현

 

 

그 물가에는 차빛귀룽나무 한 그루 서 있었네

햇귀를 끌어당겨 푸른 머리핀처럼 꽂고

심심해지면 고요 밖에서

한눈팔 듯이 제 몸을 비춰보기도 한다네

그러고 나면 어찌 눈치채고 빈 데마다

쓸데없는 구름 그늘끼리 몇 평씩 떠 흐르네

낮결 내내 부젓가락처럼 아궁이를 뒤지던

부레옥잠도 어리연도 마냥 엎질러져

정강이째 찧으며 물살을 나르네

 

한나절 봄빛을 덖어낸 차빛귀룽나무

조붓하고 어린 나비잠을 스치며

희디흰 산그늘 한 마리

드문드문 허기져서 느린 봄날을 건너네

 

 

――――――――――――――――――――――――――――――

박수현 1953년 경북 청도 출생. 2003년 『시안』 등단. 시집 『운문호 붕어빵』 『복사뼈를 만지다』 등.

 

 

 

『현대문학』 2016년 5월호(172~173)에서 이 시를 보고 몇 달 동안 걸핏하면 '차빛귀룽나무'를 생각했습니다.

'봄曜日'이야 뻔하다 싶었습니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다시 월요일…… 그런 뻔한 요일 말고 '봄曜日'이니까 당장 그 '봄요일'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 봄요일을 떠올리고 시를 다시 읽으면 무슨 마취제가 들어간 물약을 마신 것처럼 저 시 속으로 걸어 들어간 느낌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땐 실체도 없는, 아니 실체를 모르는, 차빛귀룽나무도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고 함께 따스한 미소를 지어주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알 수 없는 '차빛귀룽나무'…….

그런 나무를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디 책에서 본 적도 없었습니다.

시인들은 일쑤 자기네 나라의 것들을 각주도 달지 않고 이야기하는 분들이어서 차를 즐겨마시는 이 시인이 어디 자신의 나라에서 또 '차빛귀룽나무'라는 나무를 가져왔구나,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놓고는 그 봄날 아파트 마당을 거닐 때마다 '혹 저게 차빛귀룽나무 비슷한 나무일까?' '아니, 저건 귀룽나무 느낌을 주는 나무는 아닌 것 같아. 귀룽나무라는 이름을 가지려면 저런 모습일 리가 없어!' 혼자서 나무 이름을 짓고 다니면서 저 시인을 생각했습니다.

 

박수현 시인은 어떤 나라에 살고 있을까?

 

 

 

 

2016.5.7. 내 창문 너머의 나무들

 

 

저 나무는 차빛귀룽나무가 아닙니다. 혹이나 싶어서 인터넷에 들어가 봤더니 '아, 이런!' 차빛귀룽나무가 있었습니다. 나 참…… 나는 시인에게는 잘 속는 편이지만 시인들이 나를 속이려고 했을 리는 없습니다. 괜히 혼자서 속으며 살아갑니다. 알 수 없는 것은, 시인들은 손만 댔다 하면 말끔해지고 곱고 눈물겨워지고……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시는 내년 봄에 다시 읽어볼까 하다가 이 가을 저녁에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내년 봄…… 그게 언제까지일지 나는 알 수 없고, 재수가 좋으면 수많은 봄을 맞이할 수 있지만 혹(=재수 없으면) 당장 나의 봄이 끝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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