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시도 읽지 못하게 된 바보

by 답설재 2016. 10. 3.






시도 읽지 못하게 된 바보










Α



  한 월간 문예지를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읽었습니다.


  너무 혼란스럽고 분주하게 살 때는 구경조차 하지 못했고, 사놓고 읽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때가 몇 달, 심지어 몇 년간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근래의 20년 가까이에는 한 달도 거르지 않았고, 그 책에 실리는 단 한 편도 글도 그냥 넘기지 않았습니다. 



Β



  시 중에는, 쑥스럽지만, 더러 아직도 소년 시절인 듯 가슴이 울렁거리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불쑥 '나도 시인이 되었으면……' 엉뚱한 생각을 해보고, 낯 모르는 그 시인들을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온갖 사람들, 특히 정치가 뭔지도 모르는 것이 아닌가 싶은 정치가들이 고함을 질러대거나 기업이 뭔지도 모르고 돈의 위력만 아는 기업가들이 밉다 싶을 때는 '시인들도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니까' 괜찮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Γ



  그러다가, 몇 년 전쯤이었을까요?

  더러 이상한, 아니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파악이 되지 않는, 글쎄요, 번역된 시는 잘 읽지 않지만 ―번역되지 않은 시조차 다가가기가 조심스러워서― 번역된 시들보다 더 알쏭달쏭한, 우리글로 된 문장인데도, 칠십 년을 '읽는 일'로만 살아왔는데도, 우선 의미조차 파악할 수 없는 시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당혹스러워서 읽고 또 읽고 했습니다.

  더러 그런 시를 해설한 평론은 반갑긴 하지만 더 알쏭달쏭했습니다.



Δ



  마침내 그런 시를 읽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고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째서 내가 이 모양이 되어가는 걸까?'


  그렇게 자신을 한탄하고 원망하기 시작하자 '우후죽순'이라더니 그런 시들이 기다렸다는 듯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감당하기가 어렵게 되어버렸습니다.


  지난달 월간지에는 열 편의 시가 실렸습니다.

  나는 마침내 그 열 편 중 단 한 편도 읽지 못하였습니다. 글자는 읽었지만 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열 분의 시인 중 한 분은 내가 알기로는 서정시를 써서 등단한 시인이 분명한데 글쎄, 그분도 이번에는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시를 발표했습니다. 나 같은 인간은 읽을 수 없는 서정시였을까요?



Ε



  시인들을 원망하는 것은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것이 문제일 뿐입니다.


  시를 읽고 싶습니다.

  어디 시를 읽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겉멋만 들어 이 월간지를 들고 다니던 고등학교 시절만큼이라도 읽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데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 세 번…… 염불 하듯 읽으면 될까요? 물미 터지듯 할까요?

  아니면, 무슨 시험공부 할 때처럼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눈을 치뜨고 정신을 바짝 차려서 읽으면 좀 나을까요? 각성제를 먹어볼까요?


  아예 포기해버릴까요?

  여기까지 와서 서글프고 부끄러운 일이 되겠지만…….



Ζ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은가요? 잘들 읽고 있을까요?

  나만 멍청해진 건가요? 이런 세상에?


  혹 오늘날 시는 이제 읽는 시가 아닌 시인가요? 혼자 쓰고 혼자 읽는 그런 시……. 알고 싶어 할 필요가 없는 시…….

  그럼 그걸 왜 여럿이 보는 책에 싣고 있을까요?








'詩 읽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학자 누Nu 16」  (0) 2016.11.20
「봄요일, 차빛귀룽나무」  (0) 2016.10.19
시가 너무 쉬워서 미안할 때가 있다는 시인  (0) 2016.09.30
「사랑 비행기」  (0) 2016.09.02
「어린이 집」  (0) 2016.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