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시가 너무 쉬워서 미안할 때가 있다는 시인

by 답설재 2016. 9. 30.

 

 

 

 

 

요즘 시가 해독 불가 수준의 난해함을 띠는 것에 당위성이 있는가?

 

 

'시인수첩'(계간)이 마련한 좌담회(의미 : 우리 시가 나아갈 방향 모색―요즘 시가 해독 불가 수준의 난해함을 띠는 것에 당위성이 있는가?) 기사를 발췌해보았다.

 

대화체 문장은 신문에 실린 그대로 옮겼다.

●은 허영자(78) 시인의 견해

○은 박성준(30)·박상수(42) 시인의 견해

 

● "서투름을 시적 모호함으로, 무질서와 난삽함을 새로운 기술로 내세운다면 우리 시단에 독(毒)이 되지 않을까?"

○ "각자의 영역에서 서로 다른 문학을 하고 있지만 이런 기형성에 역기능만 있는 게 아니다."

 

● "함축과 운율, 정제된 형식을 통해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시"

○ "시는 불완전한 것" "시를 쓰는 데 전문성이 필요한지도 의심스럽다"

 

● "정리하지 않은 채 무잡하게 쏟아낸 것이 난해성이라는 허울을 쓰고 첨단을 자처해선 곤란하다" / "시의 난해함이 작품성의 견고한 뼈대 위에 위치한 것이라면 힘들게나마 해석이 되지만, 최근 시에선 그런 기미조차 찾기 어렵다"

"당위는 과정에 놓인 것이지 선행하는 것이 아니다" / "명분보다 시작(詩作)의 의미와 자기 갱신을 위한 질문이 더 중요하다"

 

● "세대 간 단절 현상을 나날이 느끼고 있다" / "독백 내지 자동 기술에 가까운 요설이 많아 읽기 자체가 어려운데, 읽기 어려운 시를 어찌 이해하며 이해 못하는 시에서 어찌 감동을 받을 수 있느냐" / "새로운 시는 과거 세대의 시와 달라야 한다는 단순 논리가 이런 사태를 부른 게 아닌가"

○ "원고지 세대와 타자기 세대의 글쓰기 태도가 다르듯, 태블릿PC 세대의 글쓰기 방식은 지금과 모든 면에서 다를 것"(박성준)

 

● "난해시가 상호 모방과 추종으로 유행한다면 독자는 더 달아날 것"

○ "시가 난해해져 시 향유층이 축소된 게 아니라 사회가 변하면서 새로운 수용·소통 양식이 형성된 것" / "소통 부재? 난해시? 문제는 어려워서가 아니라 친숙하지 않아서이다. 접촉 빈도가 희박한 김소월의 시를 보여주면 독자들은 똑같이 어려워할 거다. 난해시라고 명명하는 순간 더 난해해지는 게 아닐까?"

 

● "시인들의 정직한 자아 반성이 있어야 한다" / "아마추어 성향의 미숙한 난해시를 정리해 건강한 시단을 구축해야 한다"

○ "다양한 세대 층위와 여러 방향성으로 시단은 변화할 것"(박성준) / "여러 카테고리로 호명될 수 있는 시가 많아져 독자들이 다채로움을 느꼈으면 한다"(박상수)

 

 

 

 

조선일보, 2016.8.8. A23(일부)

 

 

 

기이한 느낌을 주는 문장들의 엇갈리는 배치와 교차……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를 의도적으로 배척하면서 행갈이와 연갈이의 여백을 활용하는 단문형 문장들, 현실세계의 중력을 벗어난 상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기이한 느낌을 주는 문장들의 엇갈리는 배치와 교차, 잘 요약되지 않는 감각적 세계에 대한 막연하고 추상적인 기술, 최근 몇 년간 마치 유행처럼 이런 경향성이 두드러진다. 이것이 전부일까. 이것이 전부여도 되는 것일까. 고민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절실함과 필연성일 텐데 대다수의 시가 이 기본적인 질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심사자의 무능 때문일 것이라 생각하여 몇 번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래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구석구석 따져 읽으면 시가 견디지를 못했다. 후, 하고 바람을 불면 몇 개 문장들만 살짝 날아가다가 빛을 잃고 금방 부서졌다. 그 뒤에도 바닥에 사금처럼 남는 무언가가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시작을 하였으니 완성을 하겠다는 단순한 의도만 살아 있을 뿐 기술적 능력을 적당히 응용하여 먼저 쓴 문장을 타고 넘는 다음 문장들이 맥없이 이어졌고 감각을 움직이거나 감동을 주는 깊이 있는 진술이 부족한 시편들이 많았다.

 

- 박상수, 「단정한 탐구자의 미덕」(『현대문학』 2015년 6월호, 2015 신인추천작 시부문 심사평) 중에서

                                                                               

 

 

어려운 시를 읽을 때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 사람의 시를 읽다 보니 그 사람이 좋아졌습니다
그 사람의 시집이 나오면 꼭 삽니다
그리고 한자한자 꼼꼼히 읽습니다
의미가 새어 나갈 가봐 문을 꼭 닫고 읽습니다
지금 열 두 편을 읽었는데 머리에 남은 것은 한 편도 없습니다
지나간 구름처럼 텅 비었습니다
그래도 그것을 나의 무능으로 여기며 13편 째 차례대로 읽습니다
내 무능이 부끄러워 숨기며 읽습니다
물론 그 사람보고 내가 지금 당신의 시를 읽고 있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내가 이해하기 어려워서 이해가 안돼서 시인에게 죄송하듯 그렇게 미안해 할 뿐입니다
자꾸 나는 내 무지로 돌리고
내 실력 없음으로 돌리고
내 자질로 돌리고 책을 놓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이 좋습니다
잠깐 나가서 눈을 비비고 들어왔는데
역시 선명하지 않습니다
더 공부해야 하겠습니다
그래도 다음에 그 사람의 시집이 나오면 또 살 겁니다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 사람은 전혀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지
그 사람의 시집을 샀는지 읽는지 읽어도 모르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모르고 있는 것이 그 사람이 나를 알고 있는 것보다 편합니다
고만한 접근이 서로 다행입니다

 

나는 내가 발견하지 못한 세계를 그 사람을 통해서 알려고 하는 노력을 내가 알면서 노력한 만큼 성과가 없어 내가 나를 채찍질합니다만 때로는 지나치다는 생각이 불평으로 옮겨 붙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미안합니다

그렇다고 내 세계를 어렵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는 시가 쉬워져서 손해 될 것이 없습니다
때로는 내 시가 너무 쉬워서 미안할 때가 있습니다

 

 

                            이생진 2016.1.19.

 

 

 

나 자신이 한심했다.

세월이 감에 따라 의미조차 파악할 수 없는 시가 점점 더 늘어났다.

시란 시는, 눈에 띄는 대로, 무슨 소리인지 모를지언정, 마음을 가다듬고 읽어온 세월 때문에 분통이 터졌다.

그러다가 이 시를 만났다.

한시름 놓고 싶어졌다.

그러면서도 더 읽으면 뭔가 보이지 않을까 싶은 미련이 영 없진 않다.

 

 

 

 

'詩 읽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요일, 차빛귀룽나무」  (0) 2016.10.19
시도 읽지 못하게 된 바보  (0) 2016.10.03
「사랑 비행기」  (0) 2016.09.02
「어린이 집」  (0) 2016.08.23
「종소리」&「상속자」  (0) 2016.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