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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철학자와 늑대》

by 답설재 2016. 10. 19.

마크 롤랜즈 Mark Rowlands

《철학자와 늑대》

THE PHILOSOPHER AND THE WOLF

LESSONS FROM THE WILD on LOVE, DEATH AND HAPPINESS

(강수희 옮김, 추수밭 2016)

 

 

 

 

 

 

 

철학자 마크 롤랜즈가 11년간 늑대와 함께 지낸 이야기이다.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때까지'의 이야기가 소설처럼 펼쳐진다. 늑대로부터 배우는 철학, 철학과 함께하는 소설이라고 하면 좋겠다.

 

늑대를 키울 수 있나?

있다. "정 키워야겠다면, 그때부터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33)

 

늑대를 '지배'하게 되었나?

아니다. 늑대 브레닌이 철학자 롤랜즈를 지배한다.

 

늑대는 개들과는 차원이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그리고 사람은 점점 중요하지 않게 된다. 브레닌과 부모, 새끼들에 관해서는 작은 것 하나까지 모두 기억난다. 생김새, 느낌, 행동, 소리와 냄새까지. 활발하고 복잡하고 풍부하고 화려한 그 모든 상세한 것들이 아직도 내 마음속에 어제 일처럼 생생히 남아 있다.(42)

 

 

 

정말로 늑대와 함께 살았나?

오죽했겠는가.

 

사랑한다고, 평생 행복하게 지내자고, 무엇이든 맹세하고 무수한 약속을 했는데도 온갖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 함께하는 것 아닌가.

8월 말, 브레닌과 나는 앨라배마 대학으로 첫 수업을 하러 함께 갔다.(75)

 

나는 어느 누구도 부러워해 본 적이 없으며, 사람들 앞에서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내가 나 자신이기보다 브레닌처럼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119)

 

브레닌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이때가 내게는 우리가 함께한 시간 중에 가장 힘든 시기였다. 6개월간 수많은 밤을 울면서 잠이 들었다.(159)1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개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분명히 그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곪아서 냄새가 나고 감염으로 엉망이 된 엉덩이를 한 달 넘게 두 시간마다 씻기기 전까지는 모를 일이다. 우리는 보통 사랑을 따뜻하고 나른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여러 얼굴을 지닌 사랑의 한 모습일 뿐이다.(248)

 

내가 브레닌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우리 꿈에서 다시 만나자'였다. (……) (253)

 

 

 

프랑스 작가 미즈바야시 아키라는, 그의 개(골든레트리버)를 위해 쓴 '사랑의 연대기' 《멜로디 Melodie》2에서 이 책 《철학자와 늑대》를 "매우 감동적인 책"이라고 했다.

그는 하필이면 「말은 해도, 거짓말은 못 한다」는, 흡사 '말만 하면 거짓말을 하는' 인간을 조롱하는 듯한 소제목에서 다음 부분을 멋지게 해석하며 옮겨 놓았다.

 

브레닌이 한 살쯤 되었을 때인가. 어느 날 저녁, 나는 TV 앞에 앉아 혼자 사는 미국 남성들의 주식이라고 할 수 있는 MSG 범벅인 간편식 헝그리맨(피나클푸드 사의 냉동식품 브랜드)을 먹고 있었다. 브레닌은 먹이를 낚아채려는 매처럼 내 옆에 엎드려 접시를 노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벨이 울려 나는 거실 탁자 위에 접시를 두고 전화를 받으러 갔다. 혹시 와일리 코요테가 로드러너워너브라더스의 루니 툰 시리즈 만화의 주인공들를 쫓아가다가 절벽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아는지? 추락 직전 뭔가 잘못된 것 같아 그제야 미친 듯 사지를 허우적댈 때의 당황한 표정을 떠올려 보라. 전화를 끊고 돌아오니 이런 상황이 벌어져 있었다. 내 점시의 헝그리맨을 허겁지겁 다 먹어 치운 브레닌은 거실 반대편의 자기 침대로 서둘러 돌아가는 중이었다. 내가 돌아올 줄 몰랐던 것도 아니지만 당황한 녀석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다리 한쪽만 앞으로 내디딘 채 그 자리에 얼어붙어 서서히 와일리 코요테의 당황한 표정으로 바뀌는 중이었다. 눈빛 가득했던 호기심은 혼란에서 결국 당혹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와일리 코요테는 벼랑 위로 풀쩍 뛰어내리기 직전 가끔 '이런!'이라고 쓰여진 푯말을 들어 올리곤 했다. 만약 브레닌에게도 이 푯말이 있었다면 들어 올리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은 한때 사자가 말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말할 것도 없이 대단한 석학이다. 그러나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가 사자에 대해 그다지 아는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늑대는 몸으로 말을 하며, 당시 브레닌의 언어는 명백했다.

'딱 걸렸네.'

이런 좀도둑질 정도는 시치미 뚝 떼고 능청을 떨며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접시가 왜 비었는지 나는 몰라요. 내가 안 그랬어요. 내가 와보니까 저렇게 되어 있던데요'라든지, 심지어는 '전화 받으러 가기 전에 다 먹고 갔잖아요. 그것도 기억 못 해요?'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늑대는 그러지 않는다. 늑대는 말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가 이해하기도 쉽다. 늑대들이 못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래서 늑대는 문명사회에 맞지 않는 것이다. 늑대도 개도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87~88)

 

 

 

절묘한 일화다. 철학자 롤랜즈가 늑대로부터 배운 것, 늑대를 통하여 알게 된 인간의 참모습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영장류의 사회적 지능의 핵심은 속임수와 계략이다. (……)이런 종류의 지능은 영장류의 왕인 호모 사피엔스를 신격화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92)

 

인류의 과학적·예술적 지능은 속임수와 계략의 피해자가 되기보다는 가해자가 되고자 하는 진화의 부산물이다.(93)

 

영장류는 늑대가 결코 꿈도 꾸지 못하고 실행하지도 못할 무자비한 방식으로 동료를 대한다.(110)

 

자연계에서 유일하게 영장류만이 도덕적 동물이 되기에 충분할 만큼 불만으로 가득하다.(112)

 

영장류는 자신보다 현저히 취약한 존재에 대해서는 도덕적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명백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계약은 자신에게 도움을 주거나, 자신을 해칠 수 있는 상대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70)

 

타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 사회라면, 도덕성이란 결국 거기에 속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울 계산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그리고 이 '계산'이라는 것이야말로 영장류의 전문 분야이다.(185)

 

 

 

  1. 우리도 한때 길들지 않은 동물이었다.
  2. 나의 늑대가 되어 줄래?
  3. 강의실에서 하울링을
  4. 너에게 길드니, 사람이 보인다
  5. 늑대의 사전에 계약이란 없다
  6. 행복이란 게 토끼보다 좋은 거야?
  7. 아직은 너를 보낼 수 없어
  8. 시간은 롤렉스 시계가 아니잖아
  9. 꿈속에서 다시 만나자

아홉 개의 이야기 속에 사랑과 우정, 신뢰, 환희, 고통, 번민, 분노, 슬픔과 눈물, 한숨이 들어 있다. 그 철학이 깊어져서 이해하기가 곤란할 때도 가슴 두근거리며 함께하게 된다.

가령 이런 철학이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특별한 개념을 지니고 있기에, 원하는 미래상을 그리며 인내하고 갱신하고 전진하고자 현재의 삶에 다른 동물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동물보다 죽을 때 더 많은 것을 잃는다.(276)3

 

우리는 죽음에 묶여 있는 존재다. (……) 시간의 선은 우리를 매혹시키기도 하고 공포에 떨게도 한다. 이것이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고통이다.(280)4 삶의 의미는 그 최고의 순간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순간들은 그 자체로 완전하며, 의미나 정당한 이유를 위해 다른 순간들이 필요하지도 않다.(290) (……) 브레닌의 죽음과 타협하지 않았을 때, 나는 최상의 모습이었다. 그 당시 나는 불면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거의 미치광이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죽어서 지옥에 간 줄 알았다.(323)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닥난 희망 끝에 남겨진 내 자신이다. 결국 끝에 가서는 시간이 우리의 모든 것을 앗아갈 것이다. (……) 하지만 최고의 순간에 실재하는 내 모습만큼은 시간이 결코 앗아갈 수 없다.(325~326)

 

 

 

야생과 함께해 보고 싶게 한 책이다. 그렇지만 이미 그렇게 할 수는 없으므로 제인 구달의 책을 읽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재미있다. 늑대 브레닌을 훈련시키는 장면의 긴장감이나 흥분이 대표적이다. 친구에게도, 학생들에게도, 가족에게도 그렇게 대하면 좋을 것이다.

문학적인 표현은 시인, 소설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영혼'이라는 말에 크게 무게중심을 두고 싶지는 않다. 육체가 죽어도 살아남는, 결코 범접할 수 없는 고귀한 것을 의미하려는 것이 아니다. 영혼이 실제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혹은 영혼은 그저 정신이고 정신은 그저 뇌의 기능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나는 의심스럽다. (……)(19)"

 

이런 표현이 문학적이 아닌가 싶었고, 이런 표현에 일일이 밑줄을 그었다.

 

 

 

늑대와 함께하는 생활이 절실함을 보여준다. 세상의 무엇에 그 절실함이 없겠는가. 그 진실에서 《철학자와 늑대》가 나왔다. 그러한 진실도 없이 어떻게 책을 쓰겠는가. 쓰레기가 아닌 책이기를 바랄 수가 있겠는가.

 

브레닌을 묻던 밤, 랑그도그 지방의 살을 에는 추위와 장례식용 모닥불에서 번지던 밝은 빛의 온기, 그 안에서 인간 조건의 근원을 찾아본다. 선택이 가능하다면 누구나 희망을 주는 따스하고 너그러운 삶을 택할 것이다. 다른 편을 택한다는 것은 미친 짓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당도한다면 늑대의 냉정함으로 살아 나가야 한다. 힘들고, 차갑고,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는 삶을 살아 내야만 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바로 이 순간들이 삶을 가치 있게 만든다. 결국 우리의 담대한 도전만이 우리를 구원하기 때문이다. 만약 늑대에겍 종교가 있다면, 바로 이런 교리를 들려줄 것이다.(330)

 

나는 책을 덮고 앉아서 마크 롤랜즈의 늑대 브레닌이 내 곁을 어슬렁거리는 느낌을 가졌다.

유치한 표현이지만 정말 어마어마하다. 달리 말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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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앨라배마를 떠나 아일랜드 코크 국립대학 교수로 가게 되어 6개월간 브레닌을 아일랜드 정부기관에 맡겨 격리하게 되었을 때를 말한다.
2. 이재룡 옮김, 현대문학 2016.
3. 삶의 의미가 소유할 수 있는 무언가에 있다는 생각은 (...) 영장류는 자신이 소유한 것을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한다. 하지만 늑대에게 중요한 것은 (...) 어떤 종류의 늑대가 되느냐는 것이다(318).
4. 동물은 순간에 산다고 그는 (가령 이렇게) 썼다. '내가 매일 아침마다 팽오쇼콜라를 3등분할 때 녀석들의 표정을 보았어야 한다. 기대감에 온몸을 떨고, 침이 강물처럼 샘솟고, 고통스러우리만큼 온 힘을 다해 집중하고 있는 모습 말이다. (......) 인간에게 순간만으로 완전한 그런 순간이란 없다. 인간의 모든 순간들은 불순물이 첨가되어 있다. 과거에 대한 기억과 미래에 대한 기대로 순간들은 혼탁해져 있다.(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