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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알랭 푸르니에 《대장 몬느》

by 답설재 2016. 10. 27.

알랭 푸르니에 장편소설

《대장 몬느 Le Grand Meaulnes》

김치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7

 

 

 

 

 

 

 

 

 

아늑한 농촌 마을 생트아가트에 모험심 강한 미소년 오귀스탱 몬느가 나타난다.

그는 나약하고 감수성 강한 프랑수와 쇠렐의 청년기를 뒤흔들어놓았다.

 

몬느는 '잃어버린 영지'를 찾아가는 모험으로 프란츠 드 갈레를 만나게 되고 그의 여동생 이본 드 갈레와 결혼하게 되지만, 프란츠는 그의 이상형 발랑틴과 맺어지지 못한다.

몬느는 이번에는 처남 프란츠를 위해 발랑틴을 찾아나서는 모험의 길을 떠나고 혼자 남은 이본은 딸을 낳으며 목숨을 잃는다.

쇠렐은, 이제 이본이 낳은 아이를 돌보며 행복해 하지만 뒤늦게 나타난 몬느에게 그 딸을 돌려준다.

 

 

 

 

잃어버렸거나 사라져버린 그 시절, 내 곁에도 '대장 몬느'가 있었나? 아니면 내가 대장 몬느였을 수도 있었나?

모험을 떠날 수 없었던 나의 그 시절은 '슬픔'이었다. '쇠렐'처럼 '몬느'의 모험을 바라보기만 했다면, 몬느가 사랑한 여인을 바라본 그 시간들도 '슬픔'이었을 것이다.

 

(행복) 지나간 시절! 잃어버린 행복! 내 친구가 떠난 뒤, 우리 청춘 시절의 신비로운 연인이었고 공주였고 요정이었던 그녀를 위해서 그녀의 슬픔을 달래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했고, 그녀의 팔을 붙들어주어야 하는 일이 내 몫이 되었다. 그 시절에 관해서, 생브누아 데샹에서 내가 수업을 마친 다음 저녁이면 그녀와 나눈 대화에 관해서 우리가 입을 다물기로 결심한 그녀와의 산책에 관해서 이제 와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266)

 

(슬픔) 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렸고, 모든 것이 고통 속에 뒤섞였다. 나는 수업을 시작할 기분이 아니었다. 학교의 바짝 마른 운동장을 걸어갔을 뿐인데 무릎에 쪼개지는 듯한 피곤이 느껴졌다. 그녀가 죽어서 모든 것이 고통스러웠고 모든 것이 쓰라렸다. 세상이 텅 빈 것 같았다. 방학도 끝났다. 마차를 타고 방황하던 긴 여정도 끝났다. 신비로운 잔치도 끝났다. 모든 것이 괴로움이 되어버렸다.(280~281)

 

 

 

 

《대장 몬느》의 주인공이 몬느가 아니고 쇠렐이라면, 이 소설은 그 슬픔을 보여준다.

이상적 여인상(이본)과 속물적 여인상(발랑틴)이 나란히 그려지고 있다. 그들은 둘 다 행복하지 않다.

 

(이본) 나는 지금까지 그처럼 우아함과 근엄함이 어우러진 여인을 보지 못했다. 옷이 어찌나 허리를 가늘어 보이게 만들었던지 그녀는 연약해 보였다. 그녀는 들어오면서 밤색 외투를 벗어 어깨 위에 걸쳤다. 그것은 처녀들 사이에서는 가장 위엄 있어 보이는 몸가짐이었고, 부인들 사이에서는 가장 가냘파 보이는 태도였다. 섬세하게 그린 듯한 이마와 뺨 위에 숱 많은 금발이 드리워져 있었다. 여름 더위 탓인지 아주 깨끗한 두 뺨은 홍조를 띠었다. 그처럼 아름다운 얼굴에 흠 하나가 보였다. 가령 슬프거나 실망했을 때, 혹은 뭔가 생각에 깊이 잠겨 있는 순간에는 그 깨끗한 얼굴이 마치 아무도 모르게 중병에 걸렸을 때처럼 약간 붉은 대리석 무늬색으로 변했다. 그래서 그녀에 대해 감탄하다가도 연민의 감정으로 바뀌어버리는데, 그녀가 많이 놀랐을 때보다도 더욱 애절해 보였다.(200)

 

(발랑틴) "그러나 결혼식은 못 올렸잖아요. 그 약혼녀가 달아나서 말이에요." 내가 말했다.

"물론 못 했지. 결혼식이 거행되지 못했지. 왜냐하면 그 정신없는 여자의 머릿속에 수천 가지 광기 어린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야. 그녀는 불쌍한 방직공 출신이었지. 그래서 그와 같은 행복을 누리는 것이 자기한테는 과분하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 청년이 너무 어리고, 그가 그 여자에게 설명한 멋진 일들이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야. 마침내 프란츠가 그녀를 데리러 왔을 때 발랑틴은 두려웠다는구나. 프란츠는 그녀의 자매와 함께 날씨가 춥고 바람이 부는 날 부르주에 있는 대주교 저택 정원에서 산책을 했지. 세심한 그 청년은 발랑틴을 사랑했으니까 언니에게도 친절하게 대했지. 그런데 그녀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상상을 한 거지. 그리고 그녀는 집에 가서 숄을 가지고 오겠다고 말했다는 거야. 그러고는 그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서 남자 옷으로 바꿔 입고 걸어서 파리로 달아났다는 거야.

그녀는 자기가 사랑했던 남자를 다시 만날 거라는 고백이 담긴 편지를 그에게 보낸 것이지.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지.

'난 그의 부인이 되느니 차라리 희생자가 되는 게 더 행복해요' 라고 그녀가 나한테 말했지. 그런데 그 바보 같은 녀석은 그녀의 언니와는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거야. (……)" (21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