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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작은 아씨들 LITTLE WOMEN》

by 답설재 2016. 11. 2.

LOUISA MAY ALCOTT

《작은 아씨들 LITTLE WOMEN》

인디고 2007

 

 

 

 

 

 

 

"아, 다시 짐을 지고 살아야 하다니 정말 힘들어."

파티 다음날 아침 메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제 휴가도 끝나고, 지겨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지난 한 주간의 즐거웠던 기억이 자꾸만 눈에 밟혀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매일매일 크리스마스고 새해면 얼마나 좋을까. 진짜 재미있겠지?"

조가 지루한 표정으로 하품을 하며 대꾸했다.

"지금의 반도 재미없을 걸. 하지만 저녁 만찬에 꽃다발을 받고, 파티에 갔다가 마차로 돌아오고, 일 대신 책이나 읽으며 쉴 수 있다면 정말 신날 거야. 꼭 다른 사람이 된 것 같겠지. 그렇게 사는 애들이 항상 부러워. 화려한 것들이 난 너무 좋거든."

메그가 낡은 옷 두 벌을 놓고 어떤 게 더 나은지 가늠해 보며 말했다.(83~84)

 

이런 건, 이런 생각, 이런 대화, 이런 시절을 보내는 건 거의 마찬가지겠지요? 물론 우리에게는 학교 다니고 EBS 수능방송 보고, 흔히 학원도 다니는 것 빼면 특별히 이야기할 게 없다는 아이들도 없진 않겠지만…….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이따위 책을 읽어야 할까? 머리가 허연 주제에?

크기가 좀 작은 책이긴 하지만 500페이지가 넘어서 한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을 고쳤습니다. 뭐 대단한 책을 읽고 학계(學界)나 관계, 정계 같은 곳으로 진출할 일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아무 거나 읽으면 어떠랴.

 

그렇게 생각하니까 전철에서도 집에서도 사무실에서도 내처 읽게 되었고 단숨에 다 읽었는데 갈수록 재미있었습니다. 아름답고 우아한 큰딸 메그(16세), 고집이 세지만 활달하고 생기 넘치는 조(15세), 천사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베스(13세), 귀엽고 사랑스러운 막내 에이미(12세), 네 자매가 펼쳐주는 이야기들…….

 

양심의 가책도 느꼈습니다. '본보기'가 되기는커녕 허구한 날 못살게 군 남편, 애비였으니 지금 얼굴을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입니다.

 

"가엾은 엄마! 그럴 땐 뭐가 도움이 되었나요?"

"너희들 아버지가 도와주셨지. 아버지는 절대로 참을성을 잃거나 불평하는 법이 없었단다. 늘 희망을 가지고 즐겁게 일하고 기다리는 분이시라 아버지 앞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였지. 아버지는 엄마를 위로하고 도와주면서 내가 너희들의 본보기이므로 너희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먼저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어. 그렇게 나보다는 너희들을 위한다고 생각하니까 훨씬 쉬워지더구나. 내가 심한 말을 했을 때 깜짝 놀라는 너희들의 표정은 그 어떤 훈계보다도 엄마를 꾸짖는 채찍이었단다. 너희들이 내게 보여주는 사랑과 존경, 그리고 믿음은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쓰는 내 노력에 대한 가장 큰 보상이었으니까."

"오, 엄마. 내가 엄마 반만큼이라도 착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조가 감동에 겨운 목소리로 외쳤다.(178)

 

자식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애들에게 이런 말을 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이래서 "다시 태어나면……." 어쩌고 저쩌고 하겠지만 그것도 정도 문제여서 그들은 진저리를 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아예 그따위 입에 바른 소리를 해본 적도 없습니다.

어쩌다보니 자꾸 네 자매의 어머니가 한 말만 인용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다보니"가 아니라 읽는 사람의 입장 때문일 것입니다.

 

"난 내 딸들이 아름답고, 교양 있고,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란단다. 칭찬과 사랑 그리고 존경을 받으면서 말이다. 행복한 젊은 날을 보내고, 현명한 선택으로 결혼을 하고, 근심과 슬픔이 없는 즐겁고 유익한 삶을 누렸으면 한단다. 여저에게 좋은 남자의 사랑을 받는 것만큼 값지고 행복한 일은 없단다. 내 딸들도 이런 아름다운 경험을 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런 생각은 자연스러운 것이야. 메그, 희망을 품고 때가 오길 기다리는 것도 바람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도 현명한 일이란다. 그래야 나중에 행복이 찾아왔을 때, 여자로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거야. 사랑하는 내 딸들아, 엄마는 너희들에게 기대하는 게 많단다. 단순히 세상에 화려하게 내보내겠다는 뜻은 아니다. 또 돈이 많다거나 좋은 집이 있다는 이유로 부자와 결혼시킬 생각도 없단다. 집은 좋을지 몰라도 사랑이 없다면 그건 진정한 집이 아니니까. 돈이란 분명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긴 하지. 잘만 사용한다면 고귀한 것이 되기도 하고 말이지. 하지만 엄마는 너희들이 돈을 제일로 친다거나 거머쥐어야 할 유일한 목적으로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너희들이 행복하고 사랑받고 만족할 수만 있다면 자존심도 마음의 평화도 없는 여왕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가난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단다."(213~214)

 

어쩔 수 없이 그 어머니의 말을 한번 더 인용합니다. 이건 "얘들아, 나 없는 동안 학교 잘 다니고 수능방송도 잘 보고 학원도 잘 다녀라." 어떻고 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입니다. 그래서 읽을 맛이 나는 것이겠지만…….

 

"메그, 신중하게 행동하고 동생들을 잘 보살펴야 한다. 해너와 늘 상의하고 힘든 일이 생기면 로렌스 씨를 찾도록 해. 참고 잘 견뎌야 한다. 조, 낙담하지 말고, 경솔한 행동도 삼가고, 엄마에게 편지도 자주 하고, 평소처럼 씩씩하게 식구들의 기를 북돋아 주렴. 베스, 음악 속에서 위안을 찾고, 집안일에 최선을 다해다오. 그리고 에이미, 너도 힘닿는 데까지 뭐든지 돕고, 언니들 말 잘 듣고, 집에서 얌전히 지내도록 해라."

"네, 엄마! 꼭 그럴게요!"

덜그럭거리며 마차가 오는 소리가 들리자 다들 화들짝 놀라며 귀를 기울였다. 힘든 순간이었지만 자매들은 잘 견뎌 냈다. 누구도 울지 않았고, 누구도 도망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안부 인사를 전할 때는 혹시나 너무 늦은 인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지만 누구 하나 슬픈 내색을 하지 않았다.(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