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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미즈바야시 아키라 『멜로디 Melodie』

by 답설재 2016. 5. 30.

미즈바야시 아키라 『멜로디 Melodie』 

이재룡 옮김, 현대문학 2016

 

 

 

 

 

 

 

 집 안에서도 우리는 서로 딱 들러붙은 한 몸처럼 느꼈다. 아침이면 나는 또 다른 의식의 순간을 가졌는데 식사하기 전에 멜로디는 내가 맛있게 먹으라는 명령을 내릴 때까지 사랑이 짙게 밴 인내심으로 먹기 전까지 나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내가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할 때면 대체로 멜로디는 내 발치에서 세상에서 가장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졸았다. 혹은 자기가 좋아하는 다른 자리에 누워 있었는데 거기에서 멜로디는 오페라와 실내음악을 전문으로 방송하는 라디오에서 하루 종일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음악을 어떤 때는 신중히, 어떤 때는 심드렁하게 들었다. 그의 취향은 나와 같았다. 아니, 그보다는 나의 취향이 그의 취향이 되었다.(202~203)

 

 

 

 

프랑스 작가 미즈바야시 아키라1가 그의 개 '멜로디'(골든레트리버)를 위해 쓴2 '사랑의 연대기'입니다.

흔히 목격하거나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은 장면이어서 옮겨보았습니다. 작가의 마음이 이보다 더 간절하게 나타난 부분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졸졸 따라다니는 애완견 한 마리를 사랑했다는 것이겠지?' 하고 아기자기한 장면이 나올 것에 대비(!)했는데, 곧 형언할 길 없는 그 사랑에 압도되어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손수건만 한 피아노 연습곡쯤일 것으로 여겼다가 엄청난 교향곡을 듣는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개, 친구, 아기, 강아지, 아이, 자기, 그, 멜로디, 친구, 너(우리, 우리 네 식구), 나의 동반자, 어린 딸과 그의 동생뻘인 동물,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 내 개, 우리의 골든레트리버, 동료, 공동 입욕자, 우리와 닮지 않은 '다른' 생명, 멜로디 상, 스승, 나이 든 아기, 나를 기다리는 존재, 암캐, 미즈바야시 멜로디(작가는 미즈바야시 아키라), 내 친구…

 

놓친 것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랑의 예찬에 동원된 호칭들입니다.

 

 

 

 

그 사랑에 대해 오페라 '장미의 기사'로도 이야기하고, 데카르트의 '방법서설'과 말브랑슈와, 자크 데리다의 '동물이기에 존재하는 나', 몽테뉴의 '수상록', 루소의 '사회계약론' '인간 불평등 기원론'의 '연민'도 이야기합니다.

더 있습니다.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로제 그르니에의 '유리시즈의 눈물',

J. 퐁탈리스의 '그녀들',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개의 이름 혹은 자연권',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 그리고 '부갱빌 여행기 보유',

다니엘 페낙 '학교의 슬픔'(잠깐만),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리고 니체,

채플린 '시티 라이트'

마크 롤랜즈 '철학자와 늑대',

몰리에르 '인간 혐오자',

라파예트 '클레브 공작부인',

라 브뤼에르 '성격론',

라 로슈푸코('인간을 위한 변명')

셀린 '성에서 성으로',

레비 스트로스,

엘리자베스 드 퐁네트 '짐승들의 침묵'

….….3

영화 '하치코', '7인의 사무라이', 프리츠 랑 감독의 '분노'

…….

 

 

 

 

도대체 어떤 이야기인지 한 마디로 요약해 달라고 할 때 제시할 만한 문장이 있습니다(296, '옮긴이의 글' 중에서).

 

'생명의 발아, 성장, 청춘의 발랄함, 그리고 노년과 병과 죽음을 곁에서 바라보며 삶의 교훈, 특히 죽음의 의미를 깨우쳐준 멜로디'

 

다음과 같은 본문 문장도 답이 될 것 같습니다.

 

개는 자기 자신보다 남을 더 사랑하는 유일한 존재라고 한다. 멜로디는 나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가 사랑한 것은 모든 것을 벗어버린 나의 자아였다.(260)

 

멜로디가 죽었을 때, 생명에 대한 예찬, 무한한 '충실성'과 '기다림', '그 창조주가 각인시킨 천상의 장엄한 단순성'(모든 외면적 치장에서 해방된 '벌거벗은 자아')과 '진지함'에 대한 이 예찬에서 작가 미즈바야시 아키라는 마침내 그의 개 멜로디의 영혼을 아버지의 영혼이 있는 그 자리에 놓았습니다.

 

아버지와 멜로디, 이들은 앞서 말했듯 나의 꿈에 가장 자주 나타나는 존재이다. 그들은 죽었지만 거기 꿈속에 있다. 옛날 사람들은 죽은 이의 유해를 49일 동안 간직했고 그 후에야 헤어져서 슬픔을 잊고 기억의 갈피 속에 깊이 넣었다. 나는 그 관습을 따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의미는 이해하지만 죽음의 침묵 너머로 여전히 내게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는 그들 두 존재와 가까운 데에서 살고 싶기 때문이다. 인간은 나를 '언어'로 인도했고 그 언어로 나는 이 책을 쓴다.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동물은 거짓 담론에 대한 나의 증오를 강화해주었고, 문학이란 거짓말을 고발하는 위험하며 방대한 시도라고 볼 수 있도록 항상 부추겼다.4

 

 

 

  1. 일본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귀화한 작가. [본문으로]
  2. 나는 인간적이며 동시에 비인간적인 '충실성'이란 덕목에 대한 일종의 문학적 짜깁기가 될 멜로디를 주제로 한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본문 277쪽) [본문으로]
  3. 아무래도 누락된 것이 있습니다. [본문으로]
  4. 이 문장 다음에 소설가 셀린의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인간은 죽음 속에서까지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이 최후의 위선을 드러내어 '아슬아슬하게' 거짓말에서 벗어나는 단어들, 단어의 조합이 있다. 소설가 셀린의 글이 우리에게 읽어보라고 초대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단어, 이러한 단어의 조합이다.(이 다음에 셀린의 글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282~284쪽)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