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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아일린 폴락 『평행 우주 속의 소녀』

by 답설재 2016. 5. 15.

아일린 폴락 『평행 우주 속의 소녀』

The Only Woman in the Room

한국여성과총 옮김, 이새, 2015

 

 

 

 

 

 

여성은 20세기 초까지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과학자' 대접을 받지 못했다. 1903년 노벨물리학상, 1911년 노벨화학상까지 받은 마리 퀴리(Marie Curie)가 당시 프랑스과학아카데미(Academy of Science)의 회원 선출에서 어이없이 탈락한 것은 극적인 사례다. 노벨상 역사에서 두 개 과학 분야에서 두 번의 상을 받은 건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하지만 그런 성취에도 불구하고 마리 퀴리는 무선통신 분야의 남성 브랜리(E. Branley)에게 밀려 탈락된다. 프랑스과학아카데미 최초의 여성 회원은 1962년, 그리고 최초의 여성 정회원은 1979년에 가서야 나타난다. 고루한 전통의 나라가 아니라 삼색기가 상징하는 자유(청색), 평등(백색), 박애(적색)의 표상인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이다.*

 

 

 

Eileen Pollack(출처: 홈페이지)

 

 

 

 

노벨상이면 그만이라거나 그게 관례였다면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잘못된 일이라면 이 책은 그 이유를 미국에서 일어난 일들로써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옛날 이야기도 아닙니다. 2015년에 나온 책을 2015년에 번역했습니다.

 

예일대 물리학 전공 강의실에서 여학생으로서 느낀 심리적 압박감과 갈등, 여자는 그렇다고 할까봐 질문도 하지 못하게 하는 편견과 차별이 주는 좌절감, 성차별적 농담, 그 속에서도 멋진 남학생, 남자 교수들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심리,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나타내는 것까지도 어려운 분위기와 한계……

 

그러나 학교를 다니며 겪은 그 일들은 이야기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를 악물고 공부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아일린 폴락은, 물리학자로의 진출을 포기하고 작가로 전향한 후 그 문제를 본격적으로 파헤쳐 이 책을 썼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습니다. 물리학을 전공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학생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습니다.

공부란 얼마나 좋은 것인가.

공부란 무엇인가.

공부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공부는 어떤 마음가짐을 필요로 하는가.

좋은 대학이란 어떤 대학인가…….

그런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만 예로 들면, 가령 책을 고르는 즐거움, 그 책들을 살 때의 기쁨과 자부심, 마음가짐, 그런 이야기에서 감동을 받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교수, 교사, 학부모 등 가까이에 학생이 있는 분이라면, 읽지 않아도 무슨 얘긴지 짐작할 수 있겠다고 하지 말고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떤 말이 학생을 도와주는 것인가.

가르친다는 것은 얼마나 즐겁고 훌륭한 일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가르치는 것인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어떻게 학생을 대해야 하는가.

이 책을 읽으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 '수학', '물리학', 'STEM' '예일대' 같은 단어들이 기본적 키워드가 되고 있지만 그렇게 생소한 단어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세 부분으로 된 책입니다.

* 고향을 떠날 때까지

* 예일 대학에서 생존하기

* 뉴헤이븐에 돌아와서

 

바쁘다면(한국의 학생이라면) 고등학교 졸업까지의 이야기('고향을 떠날 때까지'), 대학 생활('예일 대학에서 생존하기')만 읽어도 좋겠습니다.

 

그렇게 읽어도 좋은지 아일린 폴락에게 직접 물어볼 필요는 없습니다. "정말로 바쁘다면 프롤로그('찬란한 대학 시절')와 에필로그('하늘이 푸른 만큼이나 당연한 것들')를 읽어야 한다"고 할 것 같고, 그 두 부분은 훨씬 짧기 때문에 그 생각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겉핥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책을 읽지도 않고 아이들을 가르친 것이나 교육정책을 다룬 게 부끄럽고 안타깝습니다.

몸은 이미 가물가물해지는데 비로소 정신을 차리는 데 필요한 책을 읽게 되다니, 참 기이한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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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208쪽(추천사 '과학 속 여성은 왜 소수인가에 대한 답을 찾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