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한가로운 날
혼자 집에 있습니다.
누구를 초청하지도 않았습니다.
…… 초청할 만한 사람도 없습니다.
청소를 해놓고
남은 커피도 마시고
이쪽저쪽 창문을 내다보기도 하고
읽다가 만 책을 두어 페이지만 읽고
허리가 정말로 고장 났는지 헬스장에 가서 살금살금 조금만 움직여보기도 하고
공연히 조용한 전화기를 바라보기도 하고
아직 한나절이 남아서
이러지 말고 정식으로 책이나 읽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생각'합니다.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왜 책이나 읽으려고 하지?'
♬
사십여 년을 바쁘게 지냈습니다.
만사 제쳐놓고 바쁘게 지냈습니다.
설명을 덧붙이면, 일요일 아침나절, 거실로 찾아온 햇살을 보며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 좋은 곳에서 한가로이 책이나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정녕 그렇게 지낼 수는 없는 것일까……'
그렇게 한탄해놓고
게다가 퇴임한 지 또 여러 해가 지나가서 사람들이 나를 다 잊었는데도
아침나절에는 거실로 들어오는 햇살
저녁나절에는 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하루 종일 햇살만 바라보며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가고 또 갑니다.
그래서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다 잊어서 내가 이러는가?'
'저 햇살이 너무 좋아서 그런가?'
♬
나 참……
이러다가 '이러지 말고 책이나 읽을까?' 생각하다가 그만 마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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