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사연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
궁리 2009
'어·사·연=어르신사랑연구모임'
서문이 꼭 다시 한 번 읽겠다고 생각한 책 『만남, 죽음과의 만남』을 쓴 정진홍 교수의 글이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그것도 일흔이 넘으면, 나는 내가 신선(神仙)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온갖 욕심도 없어지고, 이런저런 가슴앓이도 사라지고, 남모르게 품곤 했던 미움도 다 가실 줄 알았습니다. 그쯤 나이가 들면 사람들 말에 이리저리 흔들리던 것도 까만 옛일이 되고, 내 생각이나 결정만이 옳다고 여겨 고집 부리던 일도 우스워지는 줄 알았습니다. 부럽고, 아쉽고, 그래서 시샘도 하고, 다툼도 하고, 체념도 하고, 부끄러운 변명을 하기도 했던 일도 '그것 참!' 하는 한마디 혼잣말로 다 치워지는 줄 알았습니다. 후회도, 안타까움도, 두려움도, 죽음을 직면하리라는 예상 앞에서 나도 모르게 처연해지는 절망도 아침 안개처럼 걷힐 줄 알았습니다.(9)
"일흔이 넘으면, 내가 신선(神仙)이 되는 줄 알았다."
'정말 그래!' 싶었습니다.
Ⅱ
1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한 필자가 쓴 열네 편의 글을 엮었습니다.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
'노년으로부터 인생의 길을 물었다는 의미일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노년에 이르러 드디어 인생의 길을 물었다'로 해석하기로 했습니다.
Ⅲ
잊지 않고 싶은 부분만 옮겨봤습니다. 그러니까 비망록(備忘錄) 같은 것입니다.
가령, 어느 중학생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추억이 쌓여간다는 것!"이라고 한 데서는 그 소녀가 나를 보고 "여태 뭘 하며 무슨 재미로 살았는가?" 묻는 것 같았습니다.
<10대(중학생 배윤슬)>
● '나이 든다는 것은 추억이 쌓여간다는 것!'(31)
● 내가 나이 들고 싶지 않아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점점 약해지는 신체와 생각 때문이다. (……) 피부와 몸매는 젊음을 잃어가고 체력이 떨어진다. 또 기억력도 서서히 나빠지고, 도전 정신도 없어지고, 점점 옛것을 고집한다(33).
● 나이듦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철이 들고 경험이 쌓여 가는 것이다. (……) 어렸을 때보다 어떤 일을 해볼 만한 기회가 많아진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 같다(33~34).
<10대(고등학생 배윤)>
● 버스에서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듯 큰소리로 이야기하거나 나와는 너무나 다른 생각이나 태도를 지닌 할머니 할아버지를 볼 때면 그냥 외면하고 피하게 될 뿐이다. 내 친구나 젊은 사람들에게 나는 짜증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낡은 사고방식, 교양이 부족한 매너, 깔끔하지 못한 외모……(42).(10대, 고등학생)
● 가끔은 주름살 많은 내 모습을 상상하고 꿈꾸며 설계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나는 즐거울 것이다(46).
<20대(조향경)>
● 엄마의 장례를 마치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거리에서 엄마와 비슷한 연령의 어른을 보면 가슴이 메어왔다. 그리움에 몸서리를 쳐야만 했다(49).
● '요즘 젊은 것들은……' 하시며 젊은이들의 행동에 불평을 늘어놓는 어르신은 마치 자신은 젊은 시절이 없었다는 듯이 말씀하신다. 어르신 본인도 젊은 시절을 보내며 부모님 속도 썩이고 반항도 하며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그 시절이 있었을 텐데(57).
<20대(류승남)>
● 어떤 어르신들은 항상 밝은 미소와 작은 것에도 감사해하며 남을 돕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는 반면 몇몇 어르신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분들도 있다(94).
● 몸이 건강한 어르신들은 대체로 긍정적이고 타인과도 잘 어울리며 그래서인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삶에 여유가 있다(100).
<40대(정은숙)>
● "(……)엄마 아빠 늙으면 엄마는 중랑요양원에 아빠는 시립요양원에 보내줄게. (……) 늙으면 요양원에 가는 거 아니야? 엄마 아빠는 자주 싸우니까 떨어져서 살면 안 싸우고 우리가 가끔 찾아가면 되지."(110).
● 노인 유품이라고 간호사가 건네는 약봉투에는 색이 바랠 대로 바란 장난감 반지가 세 개 들어 있었다(119).
● "저는 화장실 갈 힘이 없어서 기저귀를 차야 할 정도가 아니면 끝까지 집에서 살고 싶어요. 그렇지만 식사하고 화장실 갈 힘이 없다면 (……) 요양원에 오기 전에 살던 내 삶의 일부를 인정해주려 귀기울여주는, 노인을 친구처럼 대해주는 직원들이 있어야 하고 방을 혼자 쓰게 하라고 하면 꼭 우리 요양원에 와서 살 거예요."(120)
<50대(강의모)>
● 노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고 싶다고 말문을 떼면 대부분 사람들의 첫 반응은 비슷했다. "그걸 뭘 생각해. 어차피 곧 올 거고 미리 생각해봐야 서글프기만 하지."(143).
● 한 선배는 회사를 그만둔 지 벌써 10여 년이 가까운데도 아직도 자리를 뻇긴 것에 대한 한탄으로 후배들의 짜증을 돋우었다. (……) 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는 한 선배한테서는 이런 말도 들었다. "진짜 퇴직은 내가 회사를 그만둔 시점이 아니다. 집사람이 나의 퇴직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때가 진짜 퇴직이다." 왠지 마음이 애잔해지는,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147).
● B씨가 말하기를 바람직한 모습은 잘 모르겠고, 이런 모습만은 절대 되지 않아야겠다는 것들은 있다고 했다. 첫째는 "내가 왕년에……"를 남발하면서 스스로를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노인은 되지 않아야겠다는 것이고 (……)(151)
<60대(김용수)>
● 나이 들고 늙는 것을 싸워 이겨 정복할 대상이 아니라면 친구로 삼아야 한다(160).
<80대(유재완)>
● 월급봉투를 내놓으면서 '내가 이렇게 가족들을 먹여 살린다'고 의기양양했는데 이제 조락(凋落)의 신세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자꾸만 슬퍼진다고 했다(197).
● 애들(손자손녀) 초등학교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 이름으로 생일 축하 카드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보내주었다(203).
● 언젠가 홀로 남을 때를 대비해 '홀로서기'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아내의 가사를 도우면서 젊어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집안일, 즉 밥하기, 설거지, 장보기, 세탁기 돌리기, 다리미질, 청소 등을 느리고 둔한 손으로 조금씩 익혀가고 있다(204).
●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이 어찌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떠나겠는가. 이제 차근차근 준비를 해야 한다(206~207).
- 부부나 친척, 친구, 이웃 간에 맺힌 것이 있으면 빨리 풀어야 한다.
- 자식들에게 누가 될 만한 일을 찾아서 미리미리 없애야 한다(옷, 앨범 등 소지품)
- 남기고 싶은 말(수필, 녹음)
- 유언장 쓰기(영정과 수의 마련, 매장 방식, 장지, 인공호흡기 제거 문제, 상복, 조의금 처리 문제, 재산 분배 비율 문제 등)
<어사연 대표(유경)>
● '인생시계' 그리기 : 평균수명 80세 시대이므로 80세를 24시에 오도록 표시, 60세는 저녁 6시, 70세는 밤 9시……(219)
● 제대로 나이 먹기 : "늘어나는 나이와 함께 오랜 세월 쌓인 경험과 경륜과 지혜와 부드러움과 너그러움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때 뛰따르는 세대에게는 어른, 선배를 모시는 자부심이 저절로 생기며 모두가 높이 받들어 우러르고 싶은 권위가 되는 것(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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