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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공부의 길, 인생의 길

by 답설재 2015. 7. 26.

  # 1. 웃으며 활을 쏘던 리처드 존슨

 

"리처드 존슨은 올해 52세랍니다. 그는 지난 8월 13일, 양궁 남자 개인 32강전에서 우리의 임동현(22, 한국체대) 선수와 겨루어 115:106으로 패배했습니다."

 

적어놓고 보니 딱 두 줄이군요. 이것이 내가 신문에서 찾아 읽은 그 선수에 대한 정보의 전부입니다.

 

그날도 중국의 그 양궁 시합장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중계방송 해설자가 그 '아저씨'에게는 두 명의 자녀가 있다고 한 것 같습니다. 마음씨가 썩 좋아 보였고, 아무래도 그 '아저씨'의 아랫배가 좀 나온 것 같아서 기회가 된다면 내 아랫배와 한번 비교해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시합은 시합이어서 처음에는 나도 좀 긴장했는데, 그는 도저히 우리의 임동현 선수의 맞수는 아니었습니다. 한 발 한 발 신중한 태도로 쏘기는 했지만 차츰 점수 차가 벌어졌기 때문에, 중반전부터는 '저 아저씨는 어떤 일을 하다가 활을 쏘러 왔을까?' 그런 생각도 하며 지켜보았습니다. 더러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진지한 얼굴로 코칭스태프의 조언을 듣기도 했지만, 그는 시종일관 여유롭고 즐거운 마음으로 활을 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미소를, 그것도 그렇게 여러 번 그 '아저씨다운 미소'를 보여줄 수 있었겠습니까. 그가 그렇게 열두 발의 활을 쏘는 동안, 우리의 임동현 선수는 침착했고, 무표정했고, 굳게 다문 입술을 열지 않았습니다. 메달을 딸 각오라면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그게 당연하다는 걸 나도 인정합니다.

 

그런데도 리처드 존슨, 그가 자꾸 생각납니다. 어쩌면 벌써 그가 좀 그리워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리처드 존슨. '아랫배 아저씨', 두 아이의 아버지, ……. 잘 모르겠습니다, 혹 '집배원'이나 '경찰관'이나 '소방관'이나 '트럭 운전사' 같은 '회사원'이나 뭐 그런 직업을 가진 선수는 아닌지.

 

리처드 존슨. 나는 우리나라에도 그런 선수가 많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가령 '죽어라, 죽어라', 야구만 하다가 프로(professional) 야구선수가 되지 못하면, 그만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지는 그런 인생이라면, 참 억울하고 비참할 일 아닙니까? 한 해에 수십, 수백억 원을 받는 극히 일부 선수들을 선망하여 온 인생을 걸었던 사람, 걸고 있는 사람, 걸 사람이 수없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아, 도전해볼만한 세상이다!' 그런 생각이 들기보다는 아무래도 비정상인 것 같고, 그렇게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그 사람들을 구경하는 우리는 대단히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 아닌가, 어쩌면 한참 엉뚱하다고 할 만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한다면, 나는 우리나라의 모든 운동선수가 별도의 직업을 가지게 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선수로 등록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리처드 존슨. 만약 올림픽대회에 참가하는 모든 선수가 '리처드 존슨'이라면, 얼마나 더 재미있고 여유롭고 정답고, 평화로울까, 그래서 올림픽 정신에 더 가까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좀 한심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2008년 8월 22일에 이 글을 썼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때였습니다.

그동안 '내 생각이 바뀌었을까?' 확인해봤지만, 바꾸고 싶은 부분이 없었습니다.

이 글에는 중년이 된 제자 한 명만 댓글을 달았는데, 그것도 "옳다, 그러다"가 아니었으니 읽어본 사람들은 내심 '뭐 이런 생각을 하나?' '이걸 글이라고 썼나?'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한국의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하라면, 간단히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은 변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 2. 내가 본 한국교육

 

다음은 김정욱(고등과학원 초대 및 제2대 원장 교수의 글 「내가 본 한국교육」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원문 보기 ☞ http://blog.daum.net/blueletter01/7638570)

 

누리과정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10년 이상이 걸린다. 성장 과정으로 볼 때는 상당히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중요한 개성이 형성되고 인간이 되기 시작한다. 한국에서는 이 과정이 마라톤 코스와 같다. 누구나 1등을 할 것 같이 시작하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다. 고등학교 때는 '달리는 기계'가 되어야 한다. 마라톤 코스에는 얼마나 아름답고 신기한 자연과 환경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달리기만 하는 것이다. 선생과 부모들은 이런 것은 쳐다보지도 말라고 한다. 경주의 마지막에 주어지는 우승 상패가 중요하니까……. 그러나 그 다음에 전개되는 삶에서는 그 상패는 아무 소용이 없는 하나의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고집한다. 그렇게 지쳐서 도착한 대학과 사회에서 과연 제대로 또다시 경쟁하고 이겨낼 수 있을까? 대학과 사회에서는 여유 있고 지혜롭게 지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고등학교 졸업까지의 마라톤 코스, 대학에 입학하기까지의 마라톤 코스에서 이미 너무 지쳐버리고 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대학에 가서 드디어 공부다운 공부를 시작하고, 대학원에 가서는 더욱 그렇다. 제발 간판위주보다 실력위주로, 빨리 빨리보다 알차고 성실하게 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 3. 키다리 아저씨

 

이번에는 『키다리 아저씨』라는 소설에서 본 글입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김정욱 교수의 저 글이 생각났습니다."다 좋은 이야기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하느냐?"는 반문도 떠올랐습니다.

 

전 행복해지는 진짜 비결을 알아냈어요. 바로 현재를 사는 거예요. 과거에 얽매여 평생을 후회하며 산다거나 미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최대의 행복을 찾아내는 거죠. 순간순간을 즐기고, 즐기는 동안은 제가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인식할 거예요. 사람들은 대부분 인생을 산다기보다는 경주하고 있을 뿐이에요. 지평선 멀리에 있는 목표에 도달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죠. 한창 헉헉대며 달려가느라 아름답고 평화로운 전원 풍경엔 눈길 한 번 못 주고 말이에요.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늙고 지쳤으며 목표에 도달하고 안 하고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죠. 전 위대한 작가가 못 되더라도 길가에 앉아 작은 행복을 쌓아 올리기로 마음먹었어요. 저만큼 쑥쑥 성장하는 여류 철학자를 보신 적이 있나요?

 

 

아이들이 모두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더 행복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한번 행복하게 생활해본 사람은 앞으로도 행복하기를 바라며 생활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이런 생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원할 것입니다. 행복하지 않은 생활을 좋아할 아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왜 우리는 그렇게 해주지 않는 것입니까?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무책임한 것이 아닙니까?

하긴 해야 하는 일입니까? 그러면 왜 자꾸 미루고 있습니까?

워낙 어렵고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까? 그럼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또 있습니까?

 

 

 

교육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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