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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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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언 리더·데이비드 코필드 『우리는 왜 아플까 Why do people get ill?』(Ⅲ)

by 답설재 2015. 7. 9.

대리언 리더·데이비드 코필드 지음, 배성민 옮김

『우리는 왜 아플까 Why do people get ill? 몸과 마음의 관계로 읽는 질병의 심리학

(동녘사이언스, 2011)

 

 

 

 

 

 

 

  

    3부 정신분석학이 의사에게 묻다

 

 

  14장 심리치료가 도움이 될까?

 

 

심리문제를 몸으로 드러내는 기제가 작동한다는 것은 어떤 사례에서 문제를 말로 풀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심지어 풀어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383)

 

심장질환자는 특히 긴장을 풀면서 성급함과 적대감을 누그러뜨리는 치료에 반응한다고 한다.(391)

 

심장질환에서 암에 이르기까지 집단 치료의 장점이 꾸준히 늘고 있다.(394) 집단에 들어가면서 우리는 계속 대화하고 역할을 떠맡는다.(399)

 

운동을 하면 건강에 좋다. 그런데 의식을 행하듯 운동을 한다면 어떤 경우에 훨씬 유익할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 상징적·구조적 차원을 절대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400)

 

상징적 구조는 몸의 주기에 영향을 미친다. 유아가 말을 배우면 그 이전보다 덜 운다. 잠자는 모습도 점점 안정된다. 부모라면 다 알 것이다. 잠잘 때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면 아이가 조용해진다.(401)

 

심장병 환자의 30~60퍼센트가 대체로 수술 후 나타나는 정신병을 앓는다고 한다. 정신병은 처음에 숨어 있다. 수술 후 망상이 나타나도 이런 망상은 흔히 나타났다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 그래서 분명히 인지하기 어렵다.(406)

 

(…) 라캉은 제안했다. 의사는 환자가 전환기 경험을 말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직장을 새로 구하고, 승진하고, 부모가 되는 과정을 말하도록 도와야 한다. 어떤 수준에서 수술도 상징적 사건으로 등록될 수 있다.(407)

 

치료가 잘 끝났더라도 갑자기 상황이 변할 때, 다 나았다는 말을 들을 때, 환자는 쉽게 무너진다. 이때 우울증과 다른 신체 증상이 심해질 수 있다.(407)

 

우리는 상징적 시기와 완전히 반대되는 시기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병원에 입원하여 조용히 기다리는 시기가 그렇다. (…) 그때 그는 무력감과 소외감 때문에 분노했다.(407~408)

 

퇴직도 상징적 사건이다. 사람들은 퇴직을 바란다. 하지만 의학적 관점에서 퇴직은 지뢰밭에 더 가깝다. 직업은 한 사람에게 평생의 지위를 보장했을 것이다. 또 상징적 자리도 제공했을 것이다. 따라서 직업은 "내 실존을 어떻게 등록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 더는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될 때 위기가 찾아온다. 직업을 잃는 것은 세계에서 자기 자리를 잃는 것과 같다. 즉, 정체성이 무너진다.(408) (…) 욕망을 유지할 수 없다면 개인은 늘 위험에 빠질 것이다. 직업을 잃었을 때 그 대신 다른 것을 보상받지 못하면, 퇴직에 내재한 위험 요인이 활성화될 수 있다. 욕망의 상실을 보통 '우울증'이라 부른다. 욕망 상실은 쉽게 병에 걸리게 하는 주요 요인이다.(409)

 

입원 환자에게는 대화 상대가 꼭 있어야 한다. 욕망 상실의 효과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좋다. 오늘날 의료계에서 이런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은 거의 환상에 가깝긴 하다.(409)

 

사람들은 은행원이 바뀌어도 실망한다. 이제 똑같은 의사와 만날 수도 없다면 이것은 분명 슬픈 일이다.(410) (…) 의사, 간호사, 상담사가 자주 바뀌면 환자는 물건이 되어버렸다고 느낄 것이다.(411)

 

 

  15장 의사가 정말 바라는 것

 

정신신체의학 연구자는 여러 사례에서 기질성 증상을 없애면 정신병이 온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다.(415) (…) 예를 들어 전신 마취 수술을 받고 나서 때때로 노인에게 치매가 나타난다.(416)

 

의사가 환자를 (…) 몰아세우면 환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여기서 환자의 권리란 병에 걸릴 권리를 말한다. / 환자는 다른 영역에서 나타나는 참기 어려운 고통을 피하려고 신체 질병에 걸리기도 한다.(417~418)

 

마취된 환자를 다루는 수술 집도의처럼 많은 의사가 고분고분한 환자를 선호한다.(428) (…) 죽은 사람 같은 환자를 선호하는 의사는 질병의 원인을 따질 때 기질적 요인만 인정하려 할 것이다. 반면, 살아 있는 환자를 선호하는 의사는 심리학적 요인을 인정할 것이다.(429)

 

의대생은 수업을 수백 개나 듣고, 올바른 의견이라면 무엇이든 따라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무의식적 환상이나 확신과 아무 상관이 없다.(431)

 

다음과 같이 제안하는 것이 그렇게 터무니없을까? 문학이나 철학이 의미의 세계에 사는 인간을 연구하도록 부추기듯이 그것은 의사 지망생도 개선시킬 것이다.(431)

 

환자가 아프다고 호소할 때, 그는 어쩌면 병이 났다는 사실을 인증받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증은 단지 병에 걸리는 것과 다르다. (…) 확증해 달라는 환자의 요구는 생각하거나 심리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사건 또는 경험을 등록하려는 시도일지 모른다. 주의 깊게 들으면서 어떻게 하면 가장 적절하게 대답하는지 판단하는 작업이 정신분석이다. 라캉은 정신분석이야말로 전통 의학의 마지막 유물이라고 말했다.(432~433)

 

슬프게도 현대 의학은 경청 기술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병의 증상 뒤에서 속삭이는 환자의 말을 현대 의학은 해명하지 않으려 한다.(433~434)

 

 

 

후기 : 우리는 언제나 환자가 될 수 있다(435~440)

 

 

지금까지 우리는 전통적인 서양 의학의 단점을 살펴보았다. 서양 의학은 여러모로 인간의 질병에 적절하게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대체 의학은 환자의 말을 오래 경청하고 개성을 존중한다.

 

하나의 원인이 하나의 질병을 일으킨다는 생각은 틀렸고, 쓸모도 없다. 질병은 대부분 복잡한 과정이다.

 

고유한 과거사를 고려하면서 급격한 변화를 해석하고 처리하는 방식은 개인마다 다르다. (…) 우리는 환자의 개인사를 세심하고 폭넓게 연구해야 한다. 또 개인사를 이해하고 해석할 시간도 가져야 한다. (…) 질병을 앓았거나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이 이야기를 썼다. 의학계는 이 현상을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현대 사회의 건강 서비스 산업과 관료제는 기본적으로 내러티브라는 차원을 거부한다.

 

의사에게 가장 적절한 배경 지식이 꼭 자연과학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인정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사람들은 정신 상태가 신체 징후에서 아예 분리되어 있다는 듯이, 징후에 어떤 뜻이 있는지 묻지 않는다.

 

정신과 몸을 분리하려는 태도가 인간의 질병을 이해하는 데 앞으로 얼마나 기여할까? 그리고 그러한 태도 때문에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