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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두려워진 저 하늘

by 답설재 2015. 7. 7.

 

 

 

 

두려워진 저 하늘

 

 

 

 

 

 

                                                                                                                  2015.6.27. 오후

 

 

 

  아파트 마당에서 본 여름하늘이 저렇게 깊었습니다.

  지난봄은 연일 답답했습니다.

  봄이 봄 같지 않다더니 초여름이 눈앞에 왔는데도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가 이어져서 봄옷은 꺼내놓기만고 입지도 못했고, 게다가 미세먼지와 황사 때문에 아주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일기예보'에서는 걸핏하면 "심장질환을 앓는 사람이나 노약자"는 바깥출입을 자제하라고 했습니다. 어쩌다가 이미 '노약자'가 되어버렸고 심장질환에 걸려 "바깥출입을 자제해야 할 대상"으로 분류되었지만 그럼 어떻게 지내라는 말이냐고 되묻고 싶었습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들어앉아 있으란 말이야! 그런 말도 못 알아듣나?"

 

  마스크를 끼고 손을 잘 씻고…… 그런 부탁도 고맙긴 하지만, '적절한 마스크'가 드물었습니다. 미세먼지를 95% 이상 걸러줄 마스크가 흔하지도 않고 '식약청' 인증 마크를 획득한 것은 눈에 띄지도 않고, 혹 그런 마스크는 두꺼워서 상용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미세먼지나 황사가 몰려오는 날이 하루이틀도 아닌데 그 두꺼운 마스크를 쓰고 무얼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미 한여름이라 지금은 잊고 살지만 내년 봄에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메르스 때문에 지난 유월에도 마스크를 끼고 다녔습니다.

  방송에서는 "몇 번 환자", "백 몇십 몇 번 환자" 하고 듣기도 게름직한 '숫자'를 의학 전문용어처럼 사용했습니다. 갑자기 무슨 기이한 소설 속의 세상으로 변해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런 번호를 부여 받은 사람은 지금 로봇처럼 지낼까 싶은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자동차가 줄어들어 거리가 한산하고, 마트나 백화점, 전철, 헬스장 같은 곳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곳에서 마스크를 끼고 있다가 기침을 하면 사람들이 외면하고 힐끔거렸습니다. '에이, 정말! 이래가지고 살겠나!' 싶었습니다.

 

  그러던 세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연일 저렇게 청명한 하늘이 보였습니다. 할일도 없고 해서 아파트 마당을 거닐고 있는데 문득 '내가 죽은 뒤에도 세상은 이렇게 청명하겠지?' 싶었습니다.

  어쩌면 황사나 미세먼지쯤은 아무것도 아닌지도 모릅니다. 저 하늘이 마음만 먹으면, 우리가 정신을 좀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으면, 내일이라도 그런 문제쯤은 깔끔하게 해결해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나는 갑자기 저 하늘이 두려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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